민수기 26:52-65

민수기 26:52-65

주님께서 두번째 인구조사를 토대로 토지를 분배하라고 말씀하셨다. 수가 많은 지파에게 많이, 수가 적은 지파에게 적게 주지만, 제비뽑아 나누라고 하셨다. 그리고 레위 자손도 인구조사를 하였다. 레위 자손의 수는 이만 삼천 명이었다. 레위 자손은 첫번 조사 때보다 천 명이 늘었다. 첫번째 인구조사 때 계수된 이스라엘 자손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주님께서 첫번째 계수 된 사람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되었다.

//토지분배는 공평하게 – 인구가 많은 지파에게는 많이, 적은 지파에게는 적게 분배한다. 토지분배 순서는 제비를 뽑아 정한다. 장유유서도 아니고, 힘센 놈이 먼저 차지해서도 안 된다. //전체 인구가 제자리 걸음을 했는데, 레위 자손은 쬐끔 늘었다. 회막에서 일을 하니 그만큼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낮아서 일까? 물론 나답과 아비후 처럼 성막 일을 잘못해서 죽을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므이의 음행으로 시므온 지파가 급감했다는 것은 지도자 한 명의 행실이 지파 전체의 존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교훈한다. //광야 사십년 동안 1세대 사람들이 다 죽었다. 모두 불순종했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미리암도 아론도 죽었다.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광야생활은 이세상이고 요단강 건너 가나안은 천국이라는 도식은 맞지 않다. 천국은 물리적 시공간적 경계로 나눌 수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았을 것이다. 천국이 다름없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요단강 건너가 만날 곳이 천국이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곳이 이미 천국이다. 저세상이 천국이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하나님은 공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남의 떡이 더 커보입니다. 내 눈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는 일마다 내가 양보 해야지 내가 손해 봐야지 말은 하지만, 어느새 내 잇속을 차리고 맙니다. 그러니 더 많이 양보하 더 크게 손해보려는 마음을 주십시오.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이렇게 사는 것이 이 땅에서도 천국 맛을 보며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닌,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민수기 26:1-51

민수기 26:1-51

//염병이 지나간 후 주님께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인구조사를 명하셨다. 첫번째 인구조사로부터 40년 만의 일이다. 인구조사 결과 이십에 이상의 남자는 모두 육십만 천칠백 삼십 명이었다. 천번째 인구조사 때는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었으니 차이가 거의 없다. 대한민국 인구가 해방직후 1949년 통계로 이천만이라 하였고 1983년에 사천만이 넘었으니, 40년이 채 안 되어 두배가 되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광야 생활은 생육과 번성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떠돌이 이스라엘을 주님께서 보호하셨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눈에 띄는 것은 11절 “그렇지만 고라의 자손은 죽지 않았다.” 라는 기록이다.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에 반역을 했는데, 그 벌로 땅이 주동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을 삼켰고, 불이 반역에 합세한 이백오십명을 살랐을 때, 고라의 자손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16장 32절에서는 땅이 세 사람과 그의 집안과 고라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과 소유를 모두 삼킨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연좌제가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 같다. //시므온 지파의 수가 급감은 브올에서 음행한 일로 죽은 이만 사천 명 대부분이 음행 현장에서 제사장 비느하스의 창에 찔려 죽은 시므리와 같은 시므온 지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므리가 그냥 이스라엘 한 남자가 아니고,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 살루의 아들이였다는 기록이 그 증거다. 그만큼 지도자의 행실이 중요함을 교훈한다.


////해외를 떠돌면서도 결혼하여 다섯식구 가정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희 가정을 먹여주시고 지켜주심을 감사합니다. 남은 나그네의 삶도 음행으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세 자녀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자녀들을 지켜주십시오. 그래서 믿음의 후손을 보게 해주십시오.

민수기 25:1-18

민수기 25:1-18

발람은 브올 산 꼭대기에서 이스라엘이 지파별로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인의 회중이라고 평가했으나, 이스라엘 진 안에 일어나는 일의 실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의 백성으로 그렇게 정직하지는 못했다. (물론 정직은 하나님의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 사람의 딸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했다. 모압 여인에게 초대 된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모압의 신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브올의 신들에게 예배했다. 주님은 당연히 크게 화가 나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브올의 신들에게 예배한 백성의 지도자들을 잡아다가 교수형에 처해야 진노가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주님의 명령을 전했다.
이 일로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 입구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자손 한 남자가, 모세와 회중이 보는 앞에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제사장 비브하스가 이것을 보고 창을 들고 나와 그 남녀를 따라 들어가 창으로 죽였다. 그러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그쳤다. 그러나 그때까지 염병으로 이미 이만 사천 명이 죽었다.
주님은 모세에게 비느하스가 한 일로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비느하스와 그 자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보장하는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은 이스라엘 남자는 시므온 가문의 지도자 살루의 아들 시므리였다. 그와 함께 죽은 미디안 여자는 미디안 가문의 종파 우두머리인 수르의 딸 고스비였다. 주님은 모세에게 미디안 사람을 원수로 여겨 쳐죽이라고 명령하셨다.

//발람은 발람 – 이스라엘이 브올에서 행한 음행이 정녕 발람의 꾀(31:16)에서 나왔단 말인가? 가장 높으신 분의 지식을 가졌다 해도 이것을 바로 쓰기 위해서는 성령이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자멸하도록 하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높으신 분의 진노를 받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하는 최고의 방법인 음행을 이스라엘 진영에 심었다. 발람이 언제 어떻게 미디안 가문의 종파 우두머리 수르의 딸 고스비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브올의 신들에게 초대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발람의 꾀는 성공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음행으로 주님의 진노를 샀다. //비느하스 – 가장 높으신 분의 지식을 가졌어도 자신의 꾀로 미디안 사람을 패망시킨 발람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열정으로 발람의 꾀를 따르는 사람을 심판한 비느하스도 등장한다. 발람의 꾀로 퍼진 염병을 종식시킨 것은 제사장 비느하스의 제사가 아니라 창이었다. 주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열정이 이만 사천명의 죽음을 앗아간 염병을 그치게 했다. //어디에 거하느냐가 이리 중요하다. 자기 살던 곳으로 돌아간 발람과, 주님의 성막에서 일하는 비느하스의 차이다. 가장 높으신 분의 지식을 가졌어도 홀로 서기가 이렇게 어렵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머무르지 말게 하소서. 오늘도 제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시길 구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게 하시고, 매 순간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08/04/

민수기 24:10-25

발락은 발람에게 크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적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부른 발람이 세번씩이나 이스라엘의 복을 빌어주었으니 당연하다. 발락은 발람에게 더이상 보답할 것이 없으니 당장 돌아가라고 말했다. 발람은 발락에게 천만금을 준다해도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해야 한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고 대꾸했다. 발람은 떠나기 전에 이스라엘이 발락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브올의 아들(사람) 발람의 말이다. 눈을 뜬 사람의 말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말이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주신 지식을 가진 사람의 말이다. 환상으로 전능자를 뵙고 넘어졌다가 오히려 두 눈을 밝히 뜬 사람의 말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차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다. 한 통치 지팡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설 것이다 그가 모압의 이마를 칠 것이다. 셋 자손의 영토를 칠 것이다. 그는 에돔을 차지할 것이다. 대적 세일도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힘을 떨칠 것이다. 야곱에게서 통치자가 나와서, 그 성읍에 살아 남은 자들을 죽일 것이다.]
발람은 아말렉을 바라보면서 마침내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발람은 겐 족속에 대해서도 쇠약해지고 앗시리아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발람은 키프로스에서 온 함대에 의해 앗시리아도, 에벨도 망하고 말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발람은 급히 길을 떠나 그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발락도 제가 갈 곳으로 갔다.

//발람의 마지막 예언에서는 주님이 말씀을 발람의 입에 넣어주었다는 단서도 없다. 하나님을 만나가면서 발람은 가장 높으신 분께서 주신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 지식에 눈 뜬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축복을 너머 미래의 일까지 예언할 정도까지 되었다. 놀랍다. //발람은 그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 하나님에 대해 알았다고 반드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야 할 필요는 없다. 살던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천만금을 위해 축복과 저주를 해왔던 발람의 앞으로의 행보를 성경은 더이상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높으신 분께서 주신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눈을 뜬 사람이니, 발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말하며 살지 않았을까 한다. ////발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지 않았기를 상상하며.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기를 간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는 정직한 마음을 주십시오. 일터에서도 나의 언행을 지켜주십시오. 아멘

https://quietwaters.blog/2017/08/03/

민수기 23:27-24:9

민수기 23:27-24:9

발락은 발람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자신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은 저주해 달라고 말했다. 발락이 발람을 브올 산 꼭대기로 데리고 갔다. 발람은 발락에게 자신에게 필요한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발락은 발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에게 축복하는 것이 주님의 눈에 보기 좋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마술을 쓰지 않고 광야에 지파별로 진을 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발람에게 내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다. 눈을 뜬 사람의 말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말이다. 환상으로 전능자를 뵙고 넘어졌으나 오히려 두 눈을 밝히 뜬 사람의 말이다. 야곱아 너의 장막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이스라엘아 너의 사는 곳이 어찌 그리도 좋으냐!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목 같구나. … 그들의 나라는 널리 위세를 떨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이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

//발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신앙고백을 예언에 담았다. 첫번째 예언에서 발람은 정직한 사람이 죽듯이 죽기를 바라고, 정직한 사람의 복을 받기를 원했다. 두번째 예언에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에 거짓말도 하지 않으시고 변덕을 부리지도 않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세번째로,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이 말씀을 듣는 사람이요, 환상으로 전능자를 뵙고 넘어졌으나 오히려 두 눈을 밝히 뜬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처음 만나면 의인의 회중에 들기를 원한다. 구원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거듭난다. 나 역시 여전히 죄인이라고 밖에 달리 고백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가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점점 더 순종하기를 원한다. //발람은 눈을 들어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았을 때 세상이 과연 하나님의 영을 받을 만 한가? 자문해 본다. 발람은 지파별로 진을 친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다. 이스라엘은 그냥 오합지졸로 보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지파별로 진을 쳤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진영 내부에 들어가 보면 언제 또다시 원망과 불평으로 어수선해질지 모른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도 언약의 하나님을 이제 막 알아가는 중이 아닌가? 그들이 발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아는 만큼 손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세상은 우리를 향해 눈을 돌리고,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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