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7-27

로마서 16:17-27

바울은 마지막 권면은 분열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짓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의 순종은 모든 사람에 소문이 났다고 칭찬한다. 로마 성도의 믿음이 소문났다고 하지 않고 순종이 소문났다고 말한다. 믿음은 순종이고 순종은 믿음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선한 일에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란다. 악한 일에 순진하다는 것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우리 스스로가 악을 갚기 위해 슬기로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악을, 사탄을 쳐부수는 일은 평화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에는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함께 하면 족하다.
동역자 디모데와 친척 루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바울과 함께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한다. 대필하는 더디오도 주님 안에서 문안한다. 바울과 교회를 잘 돌보는 가이오도, 바울이 머물고 있는 도시의 재무관인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문안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으로 성도들을 능히 튼튼히 세워주심을 알았다. 복음의 비밀을 알려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복음의 비밀을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시니, 이방사람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아멘]

//로마서를 읽으면서 ‘믿음=순종’ 이라는 등식을 줄곧 생각했다. 그리고 순종은 구체적으로 형제자매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적용해봤다. 바울은 로마서를 마치면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과 다를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의 순종이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다고 칭찬했다. 믿음이라는 단어 대신 순종이라는 단어를 썼다. 마지막 세 구절에서 복음이 하나님이 명을 따라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이방사람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믿고 순종’은 믿음의 순종이다. 두 단어 모두 명사형이다. ‘믿음=순종’의 등식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편지를 마무리 한다. 예수 믿으면의 실체는 예수께 대한 순종이다. 순종을 행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순종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사로의 죽음에, 예수께서 누이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은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다는 예수께 “예, 주님! 내가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했다. 하지만 무덤 앞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의 명령에 마르다는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다. 믿음은 허사가 아니라 순종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믿음은 예수를 따르는 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10/05/

로마서 16:1-16

로마서 16:1-16

뵈뵈 자매가 바울보다 먼저 로마를 방문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바울의 편지를 가지고 가는 모양이다. 바울은 뵈뵈를 로마 성도들에게 부탁한다. 뵈뵈는 돕는데 은사가 있는 자매였으니,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추천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을 전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울의 동역자였다. 바울의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가정을 교회로 오픈했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열매인 바울이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한다.
섬기기를 잘하는 마리아에게 문안한다.
바울의 친척이며 함께 옥살이를 했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한다. 그들은 좋은 평을 받고 있고,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다.
주님 안에 있는 바울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인 우르바노, 바울이 사랑하는 스다구에 문안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한다.
아리스도불로의 가족에게, 바울의 친척 헤로디온, 주님 안에 있는 나깃수 가족, 주님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주님 안에서 수고를 많이 한 사랑하는 버시, 주님 안에서 택함을 받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한다.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와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와 그의 자매 올름바와 그들과 함게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명령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말한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바울과 생면부지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동역자도 있었고 함께 옥에 갇혔던 감방?동기도 있었다. 친척들,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바울의 행적에 고스란히 성취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이 바울이 문안하는 사람들을 수식하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할 수만 있으면 거룩한 입맞춤으로, 곧 대면교제로 진행되면 좋겠다. 그러나 떨어져 있어도 편지에 담아, 곧 비대면으로도 가능하다. 주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거룩한 성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지어져 간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임마누엘을 누린다. 믿음의 형제자매들로부터 들리는 소식에 감사하다. 때로는 그들의 아픔까지도…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자매요 어머니다. 성도는 가족공동체다.

https://quietwaters.blog/2018/10/04/

로마서 15:22-33

로마서 15:22-33

바울이 로마의 형제자매들에게 방문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그래서’라는 접속사에 담겨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로마의 형제자매들과 동역하기를 원해서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바울은 지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 스페인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형제자매들과 기쁨의 교제를 나누고, 로마의 형제자매들의 후원을 얻어 스페인으로 가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선 예루살렘으로 구제금을 전달하러 가야 한다고 편지한다.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해서, 예루살렘 성도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돕겠다고 구제금을 모았다. 마음으로만 감사를 전하지 않고 육신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전달하기를 원했고, 바울이 전달책을 맡았다. 바울은 이 책임을 마치고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고자 했다. 바울은 로마에 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말하는데, 아마도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도왔듯이, 예루살렘 성도들로부터 (박해받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전할 구체적인 위로를 가지고 가겠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성령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의 기도제목으로 1)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화를 당하지 않는 것 2) 예루살렘 성도들이 바울이 전달할 구제금을 기쁘게 받아들여지도록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을 가지고 로마에 방문해서 함께 즐겁게 쉬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피차간에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아멘으로 기도를 마친다.

//안식 중의 안식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평화다. 성도는 성도와의 교제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를 맛본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모이는 곳에 주님이 계신다. 바울은 땅끝 스페인을 보면서도 정작 기도제목은 로마의 성도들과 함께 쉬는 것에서 그친다. 함께 쉰다는 것에 다른 의미가 있을까? 성도의 교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쉼이다. 로마의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멍에를 메는 것을 함께 쉰다라고 적은 것 같다. 그동안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성도에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교제가 충전시간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10/03/

로마서 15:14-21

로마서 15:14-21

바울은 형제자매들간에 서로 권면할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형제자매들 마음에 선함(하나님의 뜻)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아는) 온갖 지식이 넘치기 때문이리라. 바울이 생면부지의 로마의 형제자매들에게 매우 담대하게 편지를 쓸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형제자매들 마음에 선함이 가득하고 온갖 지식이 넘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힘입어서다.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것은 이방사람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지만, 이방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역사다. 성령의 역사로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산) 제물이 된다. 곧 순종(믿음)의 사람들이 된다. 바울은 이 사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복음 전도의 결과는 무엇인가? 바울은 이방사람들의 순종이라고 말한다. 이방사람들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순종이라고 적었다. ‘믿음=순종’ 이라는 등식이 또다시 성립한다. 바울에게 이 순종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증명되었다. (이런 증거들을 가지고) 바울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다. 바울의 행적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보게 되고, 듣지 못하던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는 성경말씀의 성취다. (바울은 자신의 삶에서 말씀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린다.) 성도가 누릴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한다.

//바울이 하나님이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18절) 말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방인들을 ‘믿게’ 하기 위하여가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보다 더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바울은 ‘믿음=순종’이라는 등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불신=불순종이다. ‘불신지옥’이라는 구호에 익숙한 우리는 ‘지옥=불순종’ 등식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천국(하나님나라)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면, 지옥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모든 영역이다. – 오늘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8/10/02/

로마서 15:1-13

로마서 15:1-13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반복한다. 믿음을 아전인수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아전인수가 아니라 자기 이웃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면서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라고 가르친다. 섬기러 오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성경의 교훈에 따라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말한다.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 바울은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고, 한 입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돌리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셔서 성도들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도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시려고 할례를 받은 사람들과 이방 사람들에게도 종이 되셨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과 긍휼히 여김을 받은 이방 사람들간에 차별이 없다.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는 일은 없다.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복종하는 것이 삼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8/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