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14

로마서 6:1-14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 무죄르 번복되는 것이 은혜라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할까?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죄에는 죽은 사람이라고 선고한다. 그러니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없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죽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해서 함께 묻혔(죽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 한에서 살아간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는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연합하는 사람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었으니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죽음이 그리스도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죄에 대해 죽으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신다. 이와같이 성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성도는 죄가 성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정욕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정욕에 굴복하면 우리 몸을 불의의 도구(연장)가 되게 하는 것이다. 성도는 부활에 참여한 사람답게 우리 몸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성도는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죄가 성도를 다스릴 수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8/09/11/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는 존재다. 율법은 우리가 정욕에 굴복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정욕에 굴복하면 우리는 불의의 연장이 되고 만다.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고 그 결국은 죽음이다. 그래서 은혜 아래 있어야 한다. 은혜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정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은혜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이다. 이 은혜 대신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배은망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은혜 대신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여전히 내 뜻대로 하고 싶기 때문이다. 율법의 조문들에서 율법의 정신인 자비와 긍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라고(거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의 연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