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14

로마서 13:1-14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입은 성도는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해야 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이제 바울은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권세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일을 한다면 치안관들도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좋은 일을 하면 칭찬을 받을 것이다.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하는 일꾼으로 쓰임을 받는다. 그렇다고 진노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양심을 생각해서도 복종하라고 말한다. 같은 이유로 세금도 바치라고 말한다. 권세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것이 의무라고 가르친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아라.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이다.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사랑이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빛 가운데 행하듯, 단정하게 행해야 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한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8/09/28/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권세는 무엇인가? 권위와 권능으로도 번역된다. 어쩌다 권한이나 관할로 번역되기도 한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권리 (고전 7:37)나 자유로 (고전 8:9) 번역되기도 한다. 권세는 통치자나 위정자를 지칭하지 않는다. 물론 짐이 곧 법이나 국가였던 시대에는 동일시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에는 ‘권리’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소위 민주국가에서는 국민의 권리 (자유)가 정부의 권리 (권위)보다 더 높다. 따라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은위정자들에 대란 복종이 아니라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권면으로 적용하면 좋겠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리라. (왜 갑자기 이 구절이 끼어 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빚은 권세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권리에 대응하는 의무다. 다시말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세금 내는 것은 의무다. 그리고 펀치를 날린다. 이웃사랑은 의무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계명들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적용하는 방편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마치 이웃에 대하여 무슨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하지 않는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다. 성도들이 (성실히) 힘써야 할 의무는 ‘이웃사랑이다.’ 빚을 갚아야 하듯 ‘이웃사랑’을 해야 한다. ‘이웃사랑’은 결국 준법이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이다. 교회학교의 교복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찰을 달았으면 육신을 따라 행하지 말고 영을 따라 행해야 한다. 권세의 정점이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단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