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25-36

로마서 11:25-36

바울은 로마의 성도를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에게 신비한 비밀을 알려준다. 이방 사람들의 다수가 구원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을 것이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사야 27장 9절 말씀을 중심으로 “구원하시는 분이 시온에서 오실 것이니,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못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과 나 사이의 언약이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밝힌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은 이방 사람들을 위해서요, 이스라엘은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은혜)이며, 이 은혜의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듯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방 사람들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유하심이다. 사람들은 판단하거나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도 없고, 주님을 가르칠 수 도 없다. 아니 주님께 뭔가 베풀 수도 없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 주님께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잔치에 초대 받지 못했으나)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자)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대신 잔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순종하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어 그들도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긍휼을 얻기 원하신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이것이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다.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주의 마음을 알 수 도 없다. 누가 감히 주를 가르칠 수 있으랴. 누가 주께 채권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이 영원히 영광받으실 창조주이시다. 아멘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이 혼돈스러운 본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기도 하시며 준엄하시기도 하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라고 한다. (예복을 갖추지 않으면 쫓겨난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석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으면 잘리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육적 이스라엘이라고 하여도 그들의 불신앙만 버린다면 접붙임을 받게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누리고 긍휼하심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자르고 붙이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바울을 끊임없는 논점은 성도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는 것이다. 자기 백성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접하는 자 곧 주님의 이름을 믿는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다. 복음은 불순종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로 긍휼을 얻는 것이다. 자기 백성이라도 영접하지 않으면 긍휼을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행위도 아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면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렇다고 불순종에 머무를 수는 없다. //오늘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라는 것이다. 준엄하신 주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신다.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순종임을 오늘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 곧 믿음없음과 같다. ‘불순종=믿음 없음’이다.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고 해서 불순종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회개로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 곧 은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입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9/25/

로마서 11:13-24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라!

가지가 잘리지 않고 붙어 있는 이유는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가지가 잘리지 않고 붙어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지 않으면 접붙임을 받았어도 잘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자하게 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것은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란 다른 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적용할 수 있다. 믿음의 상대어는 교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인자하신 것처럼, 나도 이웃에게 인자하라고 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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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1-12

로마서 11:1-1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닌가?”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바울 자신이 그 예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엘리야 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명을 남겨두신 말씀을 소환한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선언한다. 남은 자들은 은혜로 된 것이요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위에 의한 보상이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은 찾던 것을 얻지 못하였지만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은혜를) 얻지못한 사람들은 완고해졌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혼미한 영을 주셨으니, 오늘까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못한다” 는 말씀이 완고해진 사람들에게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다윗도 “그들의 밥상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주님께 기도 했다고 시편 말씀을 소환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느냐고 묻는다.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바로 설 때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나? 바울은 아니라고 분명히 대답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적 육벙적 사람의 뜻으로 난 사람들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단서를 붙인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엘리야 때에는 은혜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 오직 칠천이었다. 칠천은 이스라엘 백성 중 1% 안 되는 수였을 것이나, 일곱이라는 완벽한 수에 십이라는 완전수를 세번씩 곱했으니 은혜를 얻은자가 온전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렁뚱땅 섞여서 은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전체가 바로 서면 그 복이 엄청나겠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엄청난 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은혜를 얻는다. 은혜는 내가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찾던 것을 얻지 못했다. – 예수께서는 구하면 얻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디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르니냐가 중요하다.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율법의 행위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생각은 혼미한 영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면 완고해진다. 완고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가지고 있던 (거룩하고 신령한) 율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성도에게도 말씀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은혜 아래 거하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사람으로 살아가라! 자비와 긍휼의 사람이 되어라!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 유력한 우승후보 독일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한 꼴이다. (물론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이태리도 네덜란드도 16강에 없다.) 그만큼 16강 맛을 본 나라들이 풍성해졌다. 독일 국민들은 시기심으로 남은 월드컵을 시청했을 것이다. 독일의 실패는 변방축구의 풍성함이 되었다. 그렇다고 독일축구의 충만함이랴! 여전히 독일은 다음 월드컵의 우승후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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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5-13

로마서 10:5-13

https://quietwaters.blog/2018/09/21/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을 바울은 6장 17절에서 ‘마음으로 순종하여’ 라고 풀어냈었다. 오늘도 ‘믿는다=순종한다’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의 고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에 대한 재청인 것이다. 믿어 의에 이르고는 순차적 단계를 뜻하지 않는다. ‘믿음=의=구원’ 이라는 등식이 자연히 성립한다. 구원은 의롭다 인정받은 것이요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자꾸 ‘믿는다’가 ‘구원’의 선행조건이라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아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원을 누리는 것이요, 믿음이 없으면 구원에서 떨어진 것이다. ////결혼전 아내에게 생일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였다. 무슨 선문답도 아니었는데… 하여간 나는 아내의 암송이 끝나기 전에 당근 아내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았다. 결혼후 아내는 그때 이남자면 됐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후로 누군가 내 생일을 물으면 나는 이 구절로 답하기도 한다.////5년전 묵상글만 읽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