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2:7-17

예레미야 12:7-17

주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사신 바 된 사랑하는 유다를 벌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소유인 유다가 주님을 향해 대적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주님을 대적하는 유다를 미워하신다. 유다는 주님의 들짐승을 삼키며, 주님의 포도원을 헐어 황무지로 만들었다. 황폐해진 땅은 슬퍼한다.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는 땅이 되었다. 농부는 수치를 당한다. 이 모두 주님의 분노로 말미암는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준 소유에 손을 대는 악한 이웃을 뽑아버리신다. 유다집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진멸은 아니다. 주님은 그들을 뽑아 낸 후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향으로 인도하신다. 그들이 주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다시 주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나라를 뽑아 멸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은 주님을 향해 핏대를 세우고 대드는 유다를 원수같이 여기신다. 유다가 주님의 원수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결국 유다에게 닥친 재앙은 유다가 자초했다. 그래도 소망이 있음은, 주님은 주님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때문이다. 불순종은 뽑아 버리시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0/

예레미야 11:18-12:6

예레미야 11:18-12:6

주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는 예레미야뿐이다. 말씀을 깨달은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의 악한 행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주님께 아뢰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재앙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들이 벌을 받는다고 하셨다. 예레미야를 협박한 아나돗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남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는 주님이 언제나 옳으셨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왜 악인들이 형통하고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하는지 주님께 묻는다. 예레미야는 그들이 말로만 주님을 섬기지, 속으로는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고발한다. 반면 자신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있음을 주님이 아신다고 예레미야는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일에 관계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예레미야는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친척, 집안식구에게까지 욕을 먹는 예레미야!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세상평가에 동요되지 말라고 하신다.

//물론 주님과 예레미야 사이는 소통이다. 그러나 주님과 백성, 예레미야와 백성 사이는 불통뿐이다. 불통보다 더 짜증나고 피곤한 일이 또 있을까?

예레미야 11:1-17

예레미야 11:1-17

주님의 말씀은 언약이다. 약속이다. 계약이다.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언약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언약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다.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모든 명령을 실천하는 사람이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신)이 되신다.’ 가 언약의 핵심이다. 주님은 언약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지키신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거리에 나가 유대 사람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여라’ 하고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언약관계는 순종할 때 유효하다는 것을 주님은 거듭 경고하신다. 그런데도 그들은 듣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자기들의 고집을 피웠다. 지금 닥친 재앙은 불순종에 대한 벌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백성이 불순종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민다고 말씀하신다. 조상들이 저지를 죄악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고 하신다. 그들의 조상들이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듯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도 언약을 파기했다고 말씀하신다.
그 결과가 벗어날 수 없는 재앙이다. 이제는 주님께 도움을 간청해도 주님이 응답하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 와중에도 자신들의 신(하나님) 곧 우상을 찾아 도움을 청하는 백성들은 재앙의 날에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생명 없는 우상이 어찌 도와줄 수 있으랴. 주님은 유다백성이 섬기는 신(하나님)들이 성읍 수만큼이나 많고, 그들이 세운 제단은 예루살렘의 골목길 수만큼 많다고 한탄하신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런 백성을 위해 중보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을 위한 중보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도 받지 않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열매가 많이 달린 올리브나무 같은 유다를 불로 사르고 그 가지를 부러뜨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죄악에 대한 벌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언약이다. 약속이다. 계약이다.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언약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 언약은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것이다.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모든 명령을 실천하는 사람이 주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신)이 되신다.’ 가 언약의 핵심이다. //언약은 주의 백성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언약에 순종해야 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에 순종해야 주의 백성의 자격이 유지된다. 언약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은혜다. 그러나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언약을 지켜야 한다.

예레미야 10:17-25

예레미야 10:17-25

“포위된 성읍에 사는 자들아, 이제 이 땅을 떠날 터이니 짐을 꾸려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멀리 내던지셔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만 심하게 다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삶의 터전도 잃었다. 일이 이지경에 이른 것은 지도자들이 주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일으키신 북쪽의 대적이 유다의 성읍들을 무너뜨리려고 진군해 온다. 이제서야 사람이 자기 운명(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만 늦었다. 이제 구할 것은 벌을 달게 받는 것이다.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 벌을 내려달라고 주님의 너그러우심에 기댈뿐이다. 주님께서 불순종의 주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쓰이는 이방백성들이라고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그들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이 름을 부르지 않기에 주님의 진노 아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을 삼키고 멸망시키고 그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사람이 자기 운명(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가 이리 어렵다. 주님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10:1-16

예레미야 10:1-16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방사람의 풍습을 배우지 말라고 하신다. 하늘의 온갖 징조에 두려워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사람들의 허황된 짓이라고 하신다. 피조된 우상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늘 누가 메고 다녀야 한다. 이런 우상이 어찌 재앙과 복을 내릴 수 있느냐고 하신다. 그러니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대신 주님과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은 위대하시며, 주님의 이름은 크시고, 주님이 권능을 지니셨다! 주님은 세계 만민의 임금님이시다. 주님은 마땅히 모든 사람의 공경을 받아야 할 분이시다. 세상 어느 왕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다. 대신 우상에게서 배운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어리석고 미련하다. 우상은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오직 주님만이 참 하나님(신)이시요, 주님만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신)이시며, 영원한 임금님이시다.
우상은 결국 없어질 것들이다. 주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누구나 어리석다. 피조된 신상, 곧 우상은 허황된 것이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상과 다르다. 주님은 창조주요,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이시다.

//우상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피조물이냐 창조주냐 만큼 확실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피조된 우상을 두려워하며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니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 말씀부재의 악순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시는 하나님(신)이시다. 세상 신(하나님)들은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권세만 있지만 (사실 생명이 없는 우상은 이럴 권세도 없다. 다만 사람들 중에 하나님(신)의 자리에 앉은 오만한 자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권세를 가지셨다. 피조된 신(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신)이시다. 주님과 같은 분은 세상에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지 말라고 하신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허황된 것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면 말씀을 마음에 두는 수 밖에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