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9:17-26

예레미야 9:17-26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은 애곡할 때라고 하신다. 조가를 부를 때라고 하신다. 울 때라고 하신다. 시온이 망했다. 포로로 잡혀가야 한다. 주님은 여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청종하라고 명령한다. 자녀에게 애도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하신다. 서로서로 장송곡을 부르는 법을 익히라고 하신다. 죽음이 닥쳤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죽어 간다. 시체가 도처에 널려있다. 지혜도 소용없고 힘도 소용없다. 재산도 자랑할 것이 못된다. 자랑할 것이라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의 긍휼과 공평과 공의라고 하신다. 주 하나님을 아는 것만 자랑하라고 하신다. 주님을 아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라고 하신다.
주님은 몸에만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아니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라고 하신다. 오직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만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나라에는고려때부터 상을 당했을 때 상주를 대신하여 대신 울어주는 ‘곡비’가 있었다. 유다에도 ‘곡비’와 같이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유다에는 울어 줄 사람을 더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체로 가득하다. 서로를 위해 울어줘야 할 지경이다. 울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울어야 한다. 서로서로 울어줘야 한다. 함께 울어야 한다. 지혜로도 힘으로도 재산으로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벌을 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다. 몸에만 할례를 받은 사람도, 아예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차별이 없이 벌을 받는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만 면벌부를 받는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벌을 면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면 애곡해야 한다. 울며 조가를 불러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긍휼과 공평과 공의의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영생을 누리는 사람이다. – 이웃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04/

예레미야 9:7-16

예레미야 9:7-16

만군의 주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연단한다. 악을 저지른 주의 백성을 다루는 방법은 시험밖에 없다. 주의 백성의 입에서 평화의 말 대신 거짓말만 나오고, 서로 해칠 생각만 품고 있으니 주님이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백성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는 황무지가 된 예루살렘을 보고 애가를 부를 수 밖에 없다. 주님이 (불순종의)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짐승들만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게하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아 사람이 살 수 없게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다가 왜 망했는지 깨닫지 못한다. 예레미야가 주님의 말씀을 전해도 깨닫는 자가 없다.
주님께서 유다가 망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어 지키라고 했지만, 그들이 그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을 순종하지 않았다.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의 고집대로 살았다. 조상들처럼 바알 신들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런 주의 백성에게 벌을 내리신다. 쓴 쑥을 먹으며 독을 탄 물을 마시게 하신다. 이방 민족 가운데 그들을 흩으신다. 불순종의 백성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을 뒤쫓게 하실 것이다.

//불순종의 백성 진멸되기까지… 주님은 주의 백성이 연단을 받아 불순물이 제거 되기까지 풀무질을 계속하실 것이다. 그러니 벌이, 진멸이 최종목적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결케 된 남은자가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한다. 이 소망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과, 조상들의 가르침, 곧 전통과 관습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주님의 법이요 주님의 말씀이다.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우리의 완악함을 녹여주는 것도 주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며,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주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이다. 깨닫는 자가 없어도 주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

예레미야 8:18-9:6

예레미야 8:18-9:6

예레미야는 자신의 심정을 ‘기쁨이 사라졌다. 슬픔이 나을 길 없다. 가슴이 멍들었다.’ 하고 표현한다. 백성들은 주님이 시온을 떠나셨다고 울부짖는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시온은 더 이상 시온이 아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위 주의 백성들이 우상들을 하나님 대신 섬기니 주님은 노하실 수 밖에 없다. 주님의 노하심에 백성들은 구출 되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이 돌이키지 않음을 불치병이라며 한탄한다.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이 살해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마치 자녀를 잃은 부모처럼 오열한다. 오죽했으면 간음하고 배신한 주의 백성을 멀리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할까? 주님의 백성이라면서 거짓만 일삼고 진신은 없고 폭력만 판을친다. 주님을 하나님인 줄 알지 모르는 백성이 되어버렸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을 알지 못하니 친척끼리도 거침 없이 사기를 치고 이웃끼리 비방하는 불신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죄를 짓는 일을 그치려 하지 않는 백성. 서로 속고 속이는 일만 되풀이 하면서 기만 가운데 사는 백성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니 시온은 더 이상 시온이 아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알고, 주님이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사망이다.그렇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이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예레미야의 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나님이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회는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가 된다. ㅠㅠ –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힘써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힘써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10/02/

예레미야 8:4-17

예레미야 8:4-17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누구나 넘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떠나간 자는 다시 돌아 온다. 그런데 예루살렘 백성은 왜 늘 떠나가기만 하고 거짓된 것에 사로 잡혀서 돌아오기를 거절하느냐고 반문하신다. 주님은 돌아 오지 않은 이유를 알기 위해 주의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신다. 그런데 주의 백성이 잘못을하고 자책을 하면서도 자신의 악생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이 주의 법규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들이 지혜를 가졌고 주님의 율법을 안다고 말은 하지만 서기관들도 율법을 거짓말로 바꾸어 놓았다고 책망하신다. 이런 거짓된 지혜와 율법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수치를 당할 것이다. 힘이 있든 없든 모두 자기 잇속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 사기로 재산을 모으는 사람들, 백성을 속이는 지도자들. 그들은 역겨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들의 결국은 죽음이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사형을 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들이 포도 덩굴에서 포도를 얻지 못하며, 무화과 나무에서 무화과를 얻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재앙을 피해 견고한 성읍들을 찾아 가지만, 주께서 보내신 적군에게 결국은 진멸당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거짓된 지혜를 가진 사람들, 율법을 거짓말로 바꾸어 놓은 사람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주님은 끊임없이 경고하시는데, 주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돌이킬 줄 모른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떠난 그들을 모른다고 하신다. 죽음이란 주님과의 단절이다. 역으로 생명이란 주님과의 연합니다. 적군을 보내시면서까지 주의 백성을 벌하시는 이유는 주의 백성이 돌아오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재앙과 벌이 아픔이어도 은혜가 되는 이유다. 그래서 하박국은 노래한다. “비록 무화과는 아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 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니다. 나는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

예레미야 7:16-29

예레미야 7:23

https://quietwaters.blog/2017/09/29/

예레미야 때에는 무너진 ‘실로’ 밖에 기억할 것이 없었다. 우리에게는 무너진 실로뿐만 아니라 무너진 ‘예루살렘’도 있다. 불순종의 마침에 대한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성도라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면 부활을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