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7-18
예레미야는 주님께 속았다고 말을 한다. 주님과 게임해서 져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하소연 한다. 예레미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치기 때문에 평안의 복음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치욕과 모욕을 받는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는 주님의 말씀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전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고발한다. 예레미야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본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의지한다.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고 주님 앞에서 큰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주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아시는 분이심을 보여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악인들의 권세에서 건져주시는 주님을 미리 찬양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출생을 저주할 정도로 수모를 받는다. 그래서 주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갚아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속는다는 것이 성립될까? 주님과 게임해서 이길 수 있다는 가정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증거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님을 안다. 다만 사방에 주님을 모르는 사람뿐이니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의지할 바는 주님밖에 없다고 말한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존재할 의미가 없다며 자신의 출생까지 저주하면서 주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갚아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속지 않는 방법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은 것이다. 주님과 맞짱을 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주님 편에 서서 게임을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세상을 인내함으로 이기는 큰 능력이다. 이 큰 능력이 주님께만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세상을 이길 능력이 없다. 어찌 살리요. 어찌살리요. 통곡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몰랐던 항우와 우희는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듯, 나도 부끄러움 너머에 있는 면류관을 본다. 사면초가라면 위를 향해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