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8:1-12

예레미야 18:1-12

주님은 토기장이 나는 진흙! 사실 진흙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주님은 주님께서 경고한 죄악에 돌이키기만 하면 주님이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하신 재앙을 거두신다. 그러나 주와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주님은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두신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닥친 재앙은 결국 주의 백성이 자신의 사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주께서 재앙을 예고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행동과 행실을 돌이키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행동하겠다.’ 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을 어쩌랴. 주님은 그릇을 빚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 진흙으로 다른 그릇을 빚으실 것이다.

//주 나의 토기장이 나 주의 진흙 그 사랑은 내 기쁨~~~~진흙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티끌이라도 토기장이가 제거해 주시지 않으면 진흙은 깨끗해 질 수 없다. 토기장이의 손에 들린 진흙이라도 불순물이 끼어 있으면 버려지기 마련이다. 만약 이 티끌을 버리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그 진흙덩이는 버려질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순전한 진흙덩이라고 하여도 어떤 그릇을 빚을 지는 토기장이가 결정한다. 심지어 그릇을 빚는 도중에 다른 그릇으로 바뀔 수도 있다. //주님과 주의 백성과의 언약관계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허물과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우리 행돌과 행실을 돌이킬 수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은 우리에게서 불순물을 제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다. 어려움을 직면해서 나의 고집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감사제목뿐만 아니라 고난도 은혜다.

예레미야 17:19-27

예레미야 17:19-27

예레미야는 주님께 고쳐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한했다. 이런 예레미야에게 주님은 느닷없이 생명을 잃지 않으려거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안식일에는 어떠한 짐도 옮기지 말라고 하신다. 짐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문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명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의 조상들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주의 명령을 청종하지고 순종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이제 조상들을 따르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라고 명하신다. 다시 한번 안식일에 성문 안으로 어떠한 짐도 가져 오지 말고 어떠한 일도 하지말라고 명하신다. 그래야 다윗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다윗의 성이 영원할 때 사람들이 주님의 성전에서 감사의 제물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안식일에 짐을 옮기고, 안식일에 성 안으로 짐을 가지고 들어오면 주님께서 성문에 불을 지르시고 궁궐을 태워버리실 것이라고 하신다.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짐을 가지고 성문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라. 성문 안은 주님의 백성들이 머무는 곳이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다. 성문 안은 오롯이 주님을 만나는 곳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주님께 나아갈 때 내 짐을 가지고 갈 이유가 없다. 주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쉼, 곧 안식이 아닌가?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는 것이 진정한 안식이기 때문에 내 짐을 가지고 나아갈 이유가 없다. 주님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이 진정한 쉼이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는(연습하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출애굽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서 창조주 (우주적) 하나님을 배우는 날이다. 내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이야 말로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증거다.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곳이 주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나라요, 순종하는 자들의 감사가 넘치는 나라다.

예레미야 17:1-18

예레미야 17:1-18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5)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7)
저주와 복을 아는 사람,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을 것입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은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저주와 복’은 무엇을 믿고 의지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여기서도 ‘믿는다’는 신뢰한다는 의미요, 충성이라는 뜻이다. 철두철미하게 믿음은 순종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킨 우리 주 예수 안에 머무는 것이 주님을 믿고 의지 하는 것다. 그래서 예레미야처럼 기도 한다. 주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낫습니다. 저를 살려주셔야 제가 삽니다. 주님만이 제가 찬양할 분이십니다.

유다의 죄는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다. (헤스터의 몸에 찍힌 것이 아니라 딤즈데일의 마음에 새겨진).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죄는 다른게 아니다. 사람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저주가 기다린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뿐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도움뿐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20/

예레미야 16:14-21

예레미야 16:14-21

재앙은 주님이 누구신지 알리는 방편이다. 지금껏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북녘 포로 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께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주의 백성의 모든 행실, 곧 죄악에 대해 먼저 벌하실 것이다. 백성의 죄악이 감춰질 수는 없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겨 창조주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을 더럽힌 그들의 죄악에 대한 벌/하나님의 보복을 달게 받아야 한다.
예레미야는 환난 날에 주님은 나의 힘과 요새와 피난처가 되신다고 노래한다. 세상 만민이 모든 땅 끝에서 주님을 찾아와 그동안 자신들이 섬기던 것이 거짓되고 헛되며 전혀 쓸모없는 피조된 우상이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려주시고, 주님이 주님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 바울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하고 고린도 성도에게 썼듯이, 예레미야는 마지막에 만민이 주께 나아와 자신들이 섬기던 것이 거짓되고 헛되며 전혀 쓸모 없는 피조된 우상이라고 고백하고, 주님의 권세와 능력을 알게 되되 주님이 주님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재앙이 주의 백성에게는 단순한 벌이 아니라 환난이다. 환난은 인내를 요구하고 연단되고 소망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다. 그러니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환난 날에 주님은 나의 힘과 요새와 피난처가 되신다고 노래한다.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9/

예레미야 16:1-13

예레미야 16:1-13

주님께서 이토록 무서운 재앙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은 ‘너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며, 내 명령을 따라 순종하지 않았다.’ 하고 답하신다. //임마누엘이 구원이라면, 불순종은 재앙이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듯,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불순종은 그 자체가 이미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곧 임마누엘이 천국이고, 낮이나 밤이나 다른 하나님(신)들을 섬기며 사는 것이 지옥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8/

인생사에 잔치와 (출생과 결혼) 장례식 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평생에 딱 세번 출생신고 결혼신고 사망신고하러 교회간다는 농담이 생겼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결혼하지 말라. 초상집에 가지 말라. 잔치집에 가지 말라. 한마디로 재앙의 날이다. 재앙이란 무엇인가? 독한 병, 칼과 기근으로 대표되는 심판이 곧 재앙이지만, 핵심은 고통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강과 인자와 사랑을 우리에게서 거두시는 것이다 [렘 16:5]. 본문 마지막절에서는 알지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13] 이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재앙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 그 자체다. 그결과 하나님나라에서 쫓겨 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재앙중의 재앙이다. 이미 지옥이다.

악한 마음 완악함을 버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