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9:1-9

열왕기상 9:1-9

주님께서 두번째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놀랍지 않은가? 성전을 건축하지 전에 나타나셨으니 이십년이 더 지나서야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이 솔로몬을 떠났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솔로몬이 주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일까?
주님은 솔로몬에게, 솔로몬이 한 기도와 간구를 들었다고 입을 떼신다. 그렇다면 왕궁을 완성하고 나서 성전을 봉헌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주님이 몇번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든, 주님은 같은 말씀을 솔로몬에게 하신다. 다윗처럼 살아라. 다윗처럼 산다는 것은, 주님이 명하신 것을 실천하고,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라고 풀이까지 해주신다. 그래야 다윗의 왕좌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확언해 주신다. //주님이 이십 여년만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지난 이십년동안 솔로몬과 함께 하셨지만,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자 마지막 카드를 빼드신 것이다.
만약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끊어질 것이요, 성전도 외면하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성전도 한낱 속담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왜 필요할까? 솔로몬이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사관은 현재시점에서 여전히 기다리시는 주님의 자비를 드러낸다. 그러나 주님은 마냥 기다리시지는 않으신다. 끝이 있다.

내가 지은 것이, 나를 나되게 하지 않는다. 주님이 세워주셔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6/

열왕기상 8:54-66

https://quietwaters.blog/2017/05/25/

/그/러/나/ 제일 감동은 봉헌식을 떠나는 백성들이 왕을 /축/복/ 했다는 것이다. 왕을 축복한 백성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왕을 축복한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사관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 하였더라.”[66] 라고 맺는다. // 왕이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축사도 높은 사람들이 한다. 축하는 서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니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왕께 ‘감사’하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사관은 적었다. 각가그이 개인은 몰라도 ‘백성들’은 왕보다 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엥 좌클릭 깜빡 깜빡 모드) 하여간 우리 정부도 국민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열왕기상 8:35-43

열왕기상 8:35-43

주님께 돌아와서 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의 기도가 좋은 예다. 주님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진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가 아니면, 주님의 용서가 아니면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를 트는 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향해 하는 이 기도를 들으신다.
적에게 패하는 것도 가뭄과 기근과 역병과 전쟁과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닥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께 죄를 지어서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아서다.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돌이켜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는 주님이 계신 하늘에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런데 주님은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주의 백성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전에 나와, 성전을 향해, 곧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들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주께 나와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해야 한다. 다른 기도는 없다. 용서를 받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역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 위해서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 주님이 그 길을 열어주셨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3/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와 간구의 핵심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의 잘못도 이스라엘에 속한 각각의 개인의 잘못도 그 잘못에 따른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는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종의 열매들이다. 기도의 열매가 아니다. 기도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 때 돌이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은혜의 통로다….]

열왕기상 8:22-32

열왕기상 8:22-32

솔로몬의 공중기도. 솔로몬은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먼저 언약을 지키시는 주님께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한다. 이어서 솔로몬은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용서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기 때문이다. 용서를 받아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람에 지은 성전에 모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전을 보고 기도하면 주님이 계시는 곳, 하늘에서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한다. 사람들이 성전에 나와 기도해도 주님은 하늘에서 들으신다. 지금 솔로몬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기도한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은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정결해야만 성전/제단 앞에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을 향한 다는 것은 주님 앞에 서기 위해 용서를 구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2/

우리는 (솔로몬 때와 달리 성전에 두신 하나님의 이름 대신)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기도에는 찬양, 감사, 회개, 중보, 간구 등 여러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 첫번째는 역시 “용서해 주세요”가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 모른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자격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도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용서해 주세요”다. 나의 찬양이, 나의 감사가, 나의 회개가 나의 중보가 나의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 하여도 나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눅 22:42 새번역]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다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