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11-27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라는 주님의 평가가 떠오른다. 그는 하나님과 대화하던 사이였다. 직접적인 대화를 끊어진 후에도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우둔해지는 다윗의 영성을 지켜주셨다. 그런데 다윗이 칩거에 들어갔다. 다윗은 아비삭의 시중을 받으면서 나단의 대면보고마저 받지 않고 죽을 때를 기다리는 듯 했다. 아도니야가 실세였다.
나단은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아도니야의 국정농단?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다윗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에게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위에 앉히겠다고 맹세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그저 다윗이 원하는 바였다면 나단은 그때 바로 잡았을 것이다.) 나단은 다윗의 약속이 하나님 앞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도니야의 국정농단에 대한 대면보고를 시도한다.
어쩌면 아비삭은 나단의 대면보고를 막기 위해 아도니야를 지지하는 신하들이 심어 놓은 문고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왕의 침실에 접근할 수 있는 밧세바를 내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다윗 왕의 침실을 열었다. 밧세바와 나단은 이구동성으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된 것이 다윗의 뜻이 아니라면 반역이요, 자신들은 숙청의 대상이라고 보고한다. 아도니야의 초청을 받지 못한 자신들이야 말로 다윗의 종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아도니야의 국정농단이 다윗의 뜻인지 아닌지 알려달라고 결단을 촉구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끊어지면 천하의 다윗이라도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다. 중요한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가 있어야 하고, 또 하나님 안에서 공동체적 교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선배든 후배든 영적인 멘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변에 나의 영적인 문제를 언급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나에게 영적인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영성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