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12-21

열왕기상 8:12-21

성전완공후 솔로몬이 주님께 아뢴다. 주님이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지만, 이제 주님께서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전을 지었으니, 성전이야말로 주님께서 영원히 계실 곳이라고 아뢴다.
그리고 솔로몬은 회중을 향해 복을 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은 주님께서 선왕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성취라고 선언한다. 다윗 대신 자신이 성전을 건축한 것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의 성취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전이야 말로 주님의 언약이 들어있는 궤를 놓아 둘 마땅한 장소라고 선언한다.

//어제에 이어 영이신 주님과 주님의 말씀/계명을 동일시 한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말씀이시다. 요한은 복음서 시작을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며 시작한다. 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말씀으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한다.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둘 마땅한 곳이 되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거할 수 없으니, 주님이 함께 하실 수 없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 성령이 거하실 수 없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예수천국은 말씀이 있는 곳, 곧 순종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불신지옥은 말씀이 없는 곳, 불순종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자! 마음에 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 도우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열왕기상 8:1-11

열왕기상 8:1-11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겼다. 성전의 수 많은 기구들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나 할까? 사관은 언약궤 안에 모세가 넣어 둔 두 개의 돌 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선언한다.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를 쏙 빼놓았다. 사관이 언약궤 안을 열어 보았을리 없다. 언약궤에 손만 대어도 죽는데 누가 언약궤를 열어볼 수 있으랴. 그렇다. 언약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십계명이 적힌 돌 판이다. 그리고성전에 있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주님의 계명이다. 만나도 싹튼 아론의 지팡이도 한시적인 것이지만, 주님의 계명은 영원하다. 주님의 말씀이야 말로 영원하신 주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4절) 하고 말씀하신 후 이어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7절) 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이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이룬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성전(성도들이 모인 곳)에서 성령하나님께서 일 하신다.

주님의 성전에 구름이 가득차듯 주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차서 제사장들은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충만한 곳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영광을 누리면 된다. 주님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된다.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 임마누엘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확증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0/

열왕기상 7:40-51

https://quietwaters.blog/2017/05/19/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이 아무리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하였다고 하여도 누구와 어떤 일을 했느냐로 평가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사관을 통하여 히람/후람이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되게 하셨다. 그가 놋으로 만든 모든 성전 기구들이 다시한번 열거된다. 역사의 현장에서 히람은 그렇게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놋기구를 만드는 곳은 예루살렘 성전마당이 아니었다. 솔로몬은 놋기구들을 속곳과 사르단 사이에 있는 요단 계곡에서 만들게 했다. 그곳에 차진 진흙이 있었기 때문이이라고 설명한다. 아마도 이 진흙으로 주형을 만들고 놋을 부어 기구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거기서 만든 기구들은 짐꾼들이 성전으로 옮겼을 것이다. 히람이 만든 놋기구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솔로몬이 다 헤아릴 수 없었다고 사관은 기록하지만 단순히 수량만이 문제가 아니라 놋바다 같이 크기가 엄청나서 측량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모든 공은 솔로몬에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사관은 다윗의 이름을 한번 더 언급한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 성전의 외형과 기구들은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가진 솔로몬의 주도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사관은 성전은 다윗의 마음에서 시작되었고 다윗이 미리 드린 물건을 성전에 두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 하나님께서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인정한 사람. 다윗. 그의 이름이 성전건축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성도가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사람이 꼭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

열왕기상 7:27-39

https://quietwaters.blog/2017/05/18/

사실 물두멍이나 그 받침이나 화려할 필요가 있는 성전 기구는 아니다. 오히려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바퀴를 달았다. 오늘 날로 말하면 포터블이다. 달리 말하면 성전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정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몸된 우리들도 언제 어디서나 정결해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로 옷입는 다는 것은 포터블을 너머 웨어러블 물두멍을 입는 것이다. 웨어러블 물두멍을 입고 살라고 바울이 권면한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1,2 새번역]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것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