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7:1-12

https://quietwaters.blog/2017/05/16/

오늘도 재탕

마지막으로 사관은 성전에 사용된 것과 같은 귀하고 큰 돌과 백향목이 왕궁 건축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건축재료가 같다고 하여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재료가 무엇이건 간에, 그 건물의 외관이 어떻든 간에 그 건물에 누가 임재(거주)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용도가 달라진다. 똑같이 귀하고 큰 돌과 백향목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하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성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솔로몬 궁전이다.

똑같이 썪어질 몸둥이를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다. 그 무엇으로 치장하여도 인격은 포장되질 않는다. 바뀌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리스도로 옷입으면 된다.

어제와 같은 엔딩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 13:14 새번역]

열왕기상 6:14-38

https://quietwaters.blog/2017/05/15/

왕상 6:14-38 단장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14] 성전 내부장식에 들어갔다. 내부장식은 성전 내부의 파티션, 즉 지성소와 성소 (내소와 외소)를 구분하고 사람이 보는 모든 면에 금을 입히는 작업이 핵심이다. 마루와 벽면 뿐아니라 제단과 그룹들도 금으로 입혔다. 이렇게 솔로몬 즉위 넷째 해에 시작한 성전건축은 솔로몬 열한째 해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다.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
성전 내부를 금으로 입힌 것은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시용이었으면 차라리 성전 외벽을 금으로 입혔을 것이다. 오히려 정금이 상징하듯 성전의 순결성의 상징하기 위한 일종의 정결의식으로 금을 입혔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 티끌만한 흠도 없는 완벽한 곳을 상징한다. 성전 건축 7년 기간중 내부 장식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라고 선언한다. 성전을 정금으로 입히는데 몇년의 시간이 필요했듯이 우리 역시 그리스도로 옷 입는데 시간이 걸린다. 짠하고 옷을 갈아 입을 순 없다. 성경도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도 해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배워하고 훈련해야 한다. 경건의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정금으로 입히는 것이다. 외형이 (할례나 세례가) 다가 아니라 마음이다.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까지 단장해야 한다. 무너질 솔로몬 성전을 단장하기 위해서도 칠년이 걸렸는데,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생 단장을 해야 한다.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사 61:10] 구원을 이룰 때까지 단장해야 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 13:14 새번역]

열왕기상 5:1-18

열왕기상 5:1-18

https://quietwaters.blog/2017/05/13/

5년전 글로 대신…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두로왕 히람의 사절단이 촉발하였다. 히람은 왜 평생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건설업자와 건축주의 관계였을까? (히람은 다윗성도 지었다. 삼하 5:11)
솔로몬은 히람왕에게 성전 건축을 (나중에 솔로몬궁까지) 의뢰한다. 그러니 히람 왕은 당대 그 지역 최고의 부자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건축물에 필요한 자재납품과 관리를 맡으려고 다윗와의 관계를 내세우며 사절단을 파견한 것이고 솔로몬은 그 미끼에 입질했다.
다윗성을 지어준 댓가로 두로왕 히람은 평화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이제 솔로몬으로부터는 물질적 보상도 받는다. 건축이 20년정도 이어졌으니 (성전 7년, 궁전 13년) 그 혜택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건설업자의 갑질에 놀아나진 않았겠지) 솔로몬이 히람 궁정에 약속한 년간 밀 이만 고르는 솔로몬의 하루 고운 밀가루 30고르와 굵은 밀가루 60 고르 (년간 32,850 고르)에는 못미치지만 2/3정도는 되니, 다윗왕국의 일종의 속국 두로왕에게는 엄청난 규모의 댓가였을 것이다. 적어도 20년간은 지속되었을 것이다.
솔로몬은 건축을 위해 역군 3만, 짐꾼 7만, 석공 8만, 그리고 관리자 3천3백명을 모았다. 강제노역에 동원한 것이다. 아도니람이 노동감독관이었는데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솔로몬 사후에 돌에 맞아 죽는다. (아도람 [12:18]과 동일인)
12절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셔서 솔로몬이 두로왕 히람과 “짝짜쿵”했다라고 사관은 기록하는데 나에게는 왜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음에도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과 죽이 맞았다.’ 로 읽히는지. 나의 솔로몬에 대한 밉상을 떨치기 쉽지 않다.
솔로몬는 자국 백성을 ‘종’ 이라고 생각하였고 노역의 삯도 히람 왕의 종들에게는 준다고 한다. 여기에 히람왕도 백성/위/에 (군림하는) 왕을 주셨다고 여호와를 찬양한다. (6,7절) 과연 입바른 찬양일까? (십중팔구 건축주에 대한 입에 발린 소리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의 시작에서 인간적인 냄새만 잔뜩 맡고 말았다. 내가 순수하지 않아서다. ㅠㅠ

열왕기상 4:20-34

열왕기상 4:20-34

솔로몬 왕국은 백성이 많아졌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이 잘 지냈다. 주변 국가들에게도 조공을 받았다. 사관은 솔로몬이 쓰는 하루 먹거리의 규모가 엄청났음을 기록한다. 주변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고 기록한다. 태평천하에 솔로몬은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이 사만칸이고 군마 만 이천필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군대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는데 전차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솔로몬의 밥상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군마들이 먹을 것도 풍족히 조달했다. 그리고 사관은 솔로몬의 지혜와 총명을 자랑한다. 솔로몬의 소문을 들은 모든 백성과 모든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몰려왔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 솔로몬 왕국은 태평천하를 누린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에도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솔로몬의 풍요만 보인다. 29절에서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한 없는 지혜를 주셨다고 기록하지만, 30절부터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이름은 감춰지고 다시 솔로몬의 지혜를 찬양한다. 3장 28절에서 백성들이 솔로몬이 재판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솔로몬을 두려워했다고,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사관마저 솔로몬의 영화(국뽕)에 취한 것일까?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솔로몬 시대에 강제노역에 동원된 백성들, 솔로몬 왕국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자기 백성들을 쥐어짜야 했을 주변국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는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였는데, 백성을 기쁘게 하는 지혜였는데. 과유불급이랄까, 솔로몬은 어느새 세상의 모든 왕보다도 높아져 버렸다. 그렇다면 더 겸손해야 하는데 솔로몬은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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