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4:1-19

열왕기상 4:1-19

//솔로몬 치하의 지도자들의 명단이 열거 된다. 사관은 솔로몬이 귀양을 보낸 아비아달을 제사장 명단에 올렸다. 나단의 아들들이 행정장관과 개인 자문관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과 강제노역 책임자라는 직책이 새롭게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누구누구의 아들들이라고 칭하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음도 강조한다. 또 솔로몬은 열두 지파 각 지방에도 장관을 파견해 중앙집권을 확립했다. 장관들 중 솔로몬의 사위들이 보이고, 열두 지방에서 왕과 왕실의 먹거리를 책임졌다는 대목은 강제노역 책임자라는 직책과 함께 솔로몬의 다스림이 그렇게 의롭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잠언 29:2,7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펴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짓는다””착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돌보지만 나쁜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솔로몬 왕은 의인인가? 아니면 악인인가? 솔로몬 정도라 해도 불완전하기는 제국의 여느 왕들과 다르지 않다. 세상 누구에게 기대하겠는가? 우리에게 새로운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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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16-28

//백성들은 솔로몬이 재판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왕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세상이다. 이유는 공정하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정하지 않은 대표적인 이유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법위에 ‘돈’이다. 그러나 법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이다. 자꾸 ‘하나님의 지혜로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구절을 ‘하나님 앞에서 공정하게 판단’한다로 읽힌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는자에게 주어진다. – 주인의 뜻에 순종 하는 종에게서 주인의 지혜를 보듯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지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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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1-15

열왕기상 3:1-15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여 내우를 해결한 솔로몬은 이제 외환을 대비한다. 그 첫번째로 이집트 왕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내우외환을 해소?한 솔로몬은 왕궁과 성전과 성벽공사에 박차를 가한다. 특별히 성전 건축의 시급성에 대해 사관은 솔로몬이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성전이 완공되기까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한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동안 솔로몬이 드린 번제물만 천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천번의 번제를 채워서일까, 주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솔로몬은 자신은 아직까지 나가고 들어오고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운을 뗀 뒤,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솔로몬이 구하는 것이 마음에 드셨다. 솔로몬이 장수(건강)이나, 재물이나, 원수갚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말을 듣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구했기 때문이다. 개인적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고 공익을 구한 솔로몬에게 주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부귀와 영화를 덤으로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주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장수의 복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솔로몬은 이 모든 꿈에서 깨어났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모든 신하에게 잔치도 베풀어 주었다.

//솔로몬이 천 번 이상의 번제를 드리고 나서야,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 속에 현현하셨다는 것은 평소 솔로몬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주님의 말씀이)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제사는 내가 종이 되기 보다 내가 주인이 되서 드리는 예식이기 쉽상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핵심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하나님을 알고 백성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을 주셨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백성을 아는 것에 대한 바른 처신을 하지 못한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을 솔로몬에게서 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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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36-46

시므이를 죽임으로 숙청이 끝난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만 살고, 만약 예루살렘을 한발짝만 떠나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이 ‘죄’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시므이는 세 해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잘? 지냈다. 그런데 시므이 종들 중 두 사람이 가드로 도망쳤다. 시므이는 가드에 있는 아기스로 가서 두 종을 찾아왔다. 시므이가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복을 받고 다윗의 보좌는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견고할 것이라고 축복한다. 시므이를 죽임으로 솔로몬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사관은 마무리 한다.

//시므이가 가택연금/주거제한을 깬 것은 발이 달린 재산 때문이었다. 재산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가택연금/주거제한을 어기면 사형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돈이 일만 악의 근원이다. 생명과 돈을 맞바꾸는 사람은 없지만, 돈이라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종종있다. 맘몬이 사람을 홀리는 방법이다. //하나님나라에 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도 눈이 돌아갈 때가 있다. 그런데 눈만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발걸음을 뗀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의 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관은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다윗의 나라가 견고해졌다라고 평가하지 않고 그냥 솔로몬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평가한다. 솔로몬이 주님의 약속, 곧 주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지켜주신다는 약속의 결말을 의지하는 듯 보이지만, 주님의 다스림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지 않으면 형통함은 복이 아니라 저주다. 임마누엘보다 더 형통함은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권력장악을 좋게만 볼 일이 아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8/

열왕기상 2:26-35

열왕기상 2:26-35

숙청! 그것도 피의 숙청이다. 솔로몬 집권 초기를 대표하는 단어다.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나돗으로 귀양 보내진 것을 제외하고는 요압도 피의숙청을 당한다. 물론 숙청은 꼼꼼하게 청소하다는 의미도 갖는다. 바르게 한다는 의미를 담기위해 숙정이라고도 한다. 숙청(肅淸)이든 숙정(肅正)이든 새포도주를 새부대에 담아야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솔로몬의 바람처럼 주님으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자비와 긍휼이 그립다.
//솔로몬은 군부의 수장도 임명하고 제사장도 새로 임명했다. 명실상부 군부와 종교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세상으로 따지면 제왕의 지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자리가 솔로몬에게는 결국 독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