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1-7

열왕기상 17:1-7

여로보암의 길보다 더 악을 행한 아합에게 주님은 엘리야를 보내셨다. 단순히 아합을 벌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에 몇해 동안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신탁했다. 그리고 엘리야는 주님의 명령대로 그릿 시내가에 숨어서 지냈다. 엘리야는 시냇물과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날라다 주는 먹을 것으로 연명했다.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버렸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5/

//주님께서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 말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씀 앞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합은 이 사건에 대해 무지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 아합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아합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합은 반응하지 않았다. ㅠㅠ//엘리야라고 가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했다.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릿 시내에서 숨어지냈다. 주님이 명하신 대로 시냇물과 까마귀들이 날라주는 음식으로 연명했다. 시냇물은 그렇다 쳐도,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이 먹기 좋은 음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양식이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은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신다. //주님은 엘리야가 숨은 그릿 시냇물은 마르지 않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엘리야에게는 말라가는 시냇물도 말씀의 성취요, 까마귀들이 조석으로 공급하는 먹을 것도 말씀의 성취다. //하나님께 대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해진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불순종이다. 아합은 둘 다였다. 무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하시는 말씀에 불순종하면 안 된다.

열왕기상 16:15-34

남 유다 아사왕이 41년을 다스리는 동안 북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왕이 바뀐다. 여로보암에서 바아사 그리고 시므리로 왕의 가문이 바뀐다. 시므리의 쿠데타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블레셋을 치러 나갔던 오므리 장군이 왕이 된 시므리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열세인 시므리가 왕궁에 불지르고 자신도 불길 속으로 들어가 죽었다. 이렇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던 시므리도 죽었다. 시므리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은 디브니를 왕으로 추대했고,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우세하여, 디브니는 살해되고 결국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 오므리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열두 해를 다스렸다. 오므리는 사마리아를 건설했다.

오므리는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했다. 그 악한 정도가 이전의 왕들보다 더 심했다고 한다. 오므리도 여로보암이 걸은 모든 길을 그대로 따랐다.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했다. 오므리가 죽고 그의 아들 아합이 왕이 되었다. 아합은 스물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아합의 악행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했다. 사관은 아합의 악행이 여로보암 죄보다 더 앞질렀다고 평가한다. 아합은 시돈 땅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아, 그 자신도 바알을 숭배했다.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과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아합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했다. 히엘이 여리고 성의 기초를 놓을 때 맏아들을, 성문을 달 때 막내 아들을 잃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여로보암의 길은 끝이 없다. 오므리 때에 그 악한 정도가 이전보다 심해졌다고 사관은 평가하는데, 오므리의 아들 아합에 오면, 아합의 악행은 여로보암의 죄보다 더 앞질렀다고 평가한다. 여로보암의 길은 근본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그래서 사관은 주님의 말씀이 변함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아합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할 때 두 아들이 죽은 일을 왕조실록에 끼어 넣는다. 이 사건은 여호수아 6장 26절의 성취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 자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말씀을 읽지 않는 자들은 시작부터 잘못된 목표를 갖는다. 그러니 과녁을 벗어날 수 밖에 없다. 죄의 길을 걷는다. 여로보암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시작했다 망했다면, 시므리 오므리 아합은 시작부터 망한 길에 발을 내 딛었다. ㅠㅠ 말씀을 마음에 두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06/14/

열왕기상 15:33-16:14

열왕기상 15:33-16:14

바아사가 북이스라엘 왕이 되어 24년동안 다스렸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걸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했다.
주님은 여로보암의 길을 그대로 걷는 바아사에게 분노하셨다. 그래서 하나니의 아들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의 가문도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멸절시키겠다 말씀하셨다. 바아사가 죽고 아들 엘라가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두해를 다스리고 죽었던 것처럼, 엘라도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엘라의 신하 시므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술취한 엘라를 죽였다. 바아사 가문은 무너지고 시므리가 엘라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시므리는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가문을 전멸시켰듯이 바아사 가문을 전멸시켰다. 바아사와 엘라가 자신들만 죄를 짓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결과다.

역사는 반복된다. 사람들은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반복되는 잘못에서 돌이킬 수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3/

열왕기상 15:25~32

열왕기상 15:25~32

//북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 나답은 두 해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여로보암의 길의 끝이 다가 온다. 남 유다의 아사가 선대의 악한 일에서 돌이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41년을 통치한 것과 비교된다. 나답은 선대의 악한 일을 답습했다. 자신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했다. 결국 하나님은 바아사를 일으켜 나답을 죽이고, 바아사를 왕으로 세우셨다.

잇사갈 가문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는 실로 사람 하나님의 사람 아히야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대로 여로보암 가문을 전멸시켰다. 사관은 한 번 더 여로보암 가문이 자신들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까지도 죄를 짓게 하였다고 평가한다. 바아사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샬롬의 도구가 되지는 못했다. 

바아사가 아사와 늘 전쟁을 했다는 것은 (여로보암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이겨서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쟁구도에서는 샬롬(평화)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선의의 경쟁은 없다고 본다. 

다윗의 길에는 경쟁이 없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죽기까지 섬기러 오셨다. 그래야 모두가 산다. 섬김의 길에 경쟁은 어불성설이다. 반대로 여로보암의 길은 경쟁의 길이다. 다른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산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죽는 길이다. 선의의 경쟁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2/

열왕기상 15:9-24

열왕기상 15:9-24

아사는 유다 왕으로 마흔한 해를 다스렸다.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그래서 은과 금과 그릇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이런 아사라도 (북)이스라엘의 바아사왕 사이에 늘 전쟁이 있자, 은과 금을 모아 시리아의 벤하닷에게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파기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아사의 늘그막에 발병이 난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아사가 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시리아의 벤하닷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을 버리고 다른데 도움을 청하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평생 다윗의 길을 따른 아사라고 해도, 할머니도 대비의 자리에서 폐위시켰다 해도, 완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완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주 예수가 나의 보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