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1-8

열왕기상 15:1-8

르호보암에 이어 아비야(아비얌)가 유다 왕이 되었다. 아비야의 어머니는 아비살롬(아마도 압살롬)의 딸(손녀) 마아가다. 아비야는 르호보암이 지은 죄를 모두 그대로 따라갔다. 사관은 이것을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라고 표현한다.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은 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유다가 망하지 않은 이유를 사관은 주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관은 다윗에게서 헷사람 우리야의 사건 말고는 주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하나님의 중재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관은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아비야는 삼년을 다스리고 죽고, 그의 아들 아사가 이어서 왕이 되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10/

//아비야의 죄는 다윗의 마음과 달랐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다윗의 마음과 달랐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마음이 달랐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주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 있어도 곧 바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포도원에서 일 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아니오’ 하고 대답 했어도, 뉘우치고 일하러 나간 아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마는, 주님은 주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주의 말씀을 마음 속에 둘 때,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지 않을까 희망한다.  

열왕기상  14:21-31

열왕기상  14:21-31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이미 마흔한 살.  그렇다면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 르호보암의 어미 나아마는 솔로몬의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졌다. (스바의 여왕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청년? 솔로몬은 이 암몬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고, 나아마는 조강지처로 (통혼정책으로 데려온) 다른 여자들 위에 군림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암몬의 신(밀곰/몰렉)은 인신제사를 받는 신이 아니던가. 솔로몬에게 일천이나 되는 첩과 후궁이 있었음에도 나아마와 그의 자녀들의 이름 외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유를 나아마가 다른 여인이 낳은 아이들을 인신제사로 바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상상해 본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여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숨겼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르호보암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한 것은 어미 나아마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솔로몬도, 르호보암도 나아마의 손아귀에서 놀아 났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 ㅠ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카피도 있지 않은가? //사관이 반복해서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이고 암몬여자라고 강조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9/

열왕기상 14:1-20

열왕기상 14:1-20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다. 여로보암은 아내에게 실로에 있는 아히야 예언자에게 가서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실로에 있는 아히야의 집에 이르렀다. 아히야는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미리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자기 아들의 일을 물으려고 올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들어오자 여로보암의 아내인 것을 알고 있으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아히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하고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왕국을 쪼개어 네게 주었다. 그러나 너는 내 종 다윗처러 살지 않았다. 다윗은 내 명령을 지키고, 내가 보기에 올바르게 행동하였고 마음을 다해서 나늘 따랐다. 그러나 너는 앞선 모든 왕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했다. 다른 신을 만들었다.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보암의 가문에 재난을 내리겠다. 여로보아 가문에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끊어 버리겠다. 여로보암의 속한 사람 중 죽은 사람들은 개들이 먹어치울 것이고 성읍 바깥에서 죽은 사람은 하늘의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을 것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를 돌려보내면서, 부인이 성읍 안에 들어설 때에 아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아들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제대로 무덤에 묻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다스릴 또 다른 한 왕을 세우실 것이며, 그가 여로보암의 가문을 끊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 이 모든 일이 여러보암의 아내가 성읍에 들어가는 순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불순종의 이스라엘을 쳐서 유프라테스 강 저쪽으로 흩으실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여로보암이 죄를 지었고, 이스라엘까지 죄를 짓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집으로 들어설 때 아들이 죽었다. 온 이스라엘이 그 아이를 장사했다.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다.

여로보암의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 여로보암은 스물두해 동안 다스린 뒤에 죽고,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히야 앞에 나가서 아들에 관해 묻기를 주저했다. 대신 아내를 보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나아가야 한다. 여로보암의 태도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이다.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들다니. 여로보암의 길은 이렇게 다윗의 길과 달랐다. 반면 다윗의 길은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아들을 낳고 ‘아비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도 신실했었다. 아비야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아비야는 이름값을 하며 산 것 같다. 사관은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게 살았다고 기록한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길의 결국, 즉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지 않고 무덤에 장사되는 복을 누렸다. 때론 일찍 죽는 것도 복이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들의 죽음에도, 말씀의 성취를 목격하고도 여로보암은 요지부동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결과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8/

열왕기상 13:20-34

https://quietwaters.blog/2017/06/07/

//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 때로는 속임수에 능한 사람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일관되게 사용하던 하나님의 사람에서 선지자라고 표현이 바뀐이유는 무엇일까?)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나귀에 태워 보냈다. 유다에서 온 사람 (이제는 선지자라는 표현도 안쓰고 그저 사람이라고… 음)은 길을 가다가 사자에게 물려 죽어 시체가 길에 버려졌고 (이상하게도) 나귀도, 사자도 그 시체 옆에 서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벧엘로 가서 사람들이게 자신들이 본 것을 말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확신에 유다에서 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아들들에게 준비 시킨 나귀를 타고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은 사람들이 전해 준 그대로 였다. 사자가 시체도 나귀도 먹거나 찢지 않았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돌아와 슬피 울며 장사해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내 형제라 부르며 슬퍼 울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서 제사장 엘리의 말년이 떠오른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삼상 3] 엘리는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때였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 사무엘에게 임한다. 엘리는 사무엘에게 임한 이상이 궁금했다. 그는 사무엘을 불러 하나도 숨기지 말고 자신에게 얘기 하라고 명령? 했고 사무엘은 엘리에게 자세히 조금도 숨김없이 말해 주었다. 엘리는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늙은 선지자의 유언적 예언도 제사장 엘리의 말과 마찬가지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나님 말씀이 나의 처한 상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상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야 함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열왕기상 13:11-19

열왕기상 13:11-19

https://quietwaters.blog/2017/06/06/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암송하면서도 삶에서는 그 명령에 나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령을 부분적으로 누락시키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이렇게 나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 하다보면 그럴싸한 거짓 설교에 속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