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7:1-21

욥 7:1-21

인생은 저물기를 기다리는 종과 같다고, 또 수고한 삯을 기대하는 품꾼과 같다고 노래한다. 욥은 이 결산의 때를 기다린다. 그러나 온 몸이 종기로 터져나가고 있는 지금, 아무런 소망도 없이 종말을 맞는 것 같다고 노래한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셔도 자신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라고 노래할까. 주님 앞에서 결산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곧 지옥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욥은 마지막 힘을 내서 입을 연다. 여기서 잠자코 있으면 지난 날의 수고가 헛되니 분하고 괴롭다고 말을 한다. 욥은 주님께서 자신을 안식이 아니라 고통가운데서 놀라고 무서워 떨게 하시는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 죽어서라도 주님을 만나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 유한한 인생을 이렇게 (주님의 뜻을 모르고) 사는 것이 지겹다고 한다. 주님으로 기뻐해야 할 삶이 주님의 시험을 받아 놀라고 무서워 떠는 삶이 되었으니 허무하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욥은 이것도 주님께서 사람을 염두에 두셨다는 증거라고 말을 한다. 주님은 아침부터 사람을 살피신다. 욥은 사람이 잘못을 해도 주님에게는 아무런 해도 없는데, 왜 지켜보시고 사람을 주님의 짐으로 생각하시는 묻는다.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 욥이 드디어 자신에게도 허물이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다. 

// 주인이 올 때 깨어 있는 종은 복이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깨어 있는 종에게 ‘그 주인이 허리를 동이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서 와서 시중을 들것이다.” 종이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이유가 돌아오신 주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니 놀랍지 않은가?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시, 내 잔이 넘칩니다.’ 욥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세다. 그런데 지금 욥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주인이 돌아올 때가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왔을 때 자신은 이미 죽고 없을 것 같아 애통해 한다. 지금까지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악에서 멀리 떠났건만, 주인이 오기 전에 죽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라고, 지옥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욥이 본문 마지막에 용서를 구한 자신의 허물과 죄악은 주인이 더디 오신다고 자신의 소망이 마치 끊어진 것처럼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욥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의 출입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삶에 마치 하나님이 없다는듯 노래했으니 이보다 더 큰 허물과 악은 없을 것이다. //욥의 토로대로 하나님이 사람(욥)을 짐으로 생각하셨을까? 욥(사람)이 고통가운데 잠시나마 오히려 주님을 짐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빅브라더’가 아니라, 임마누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