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1:1-20

욥기 11:1-20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에게 대꾸한다. 소발은 욥의 대답과 욥의 기도를 헛소리라고 반응한다. 하나님께서 친구를 보내셔서 위로는 커녕 정죄만 하게 하셨다는 욥의 말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소발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지혜를 드러내어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상은 소발의 소견을 말한다.) 소발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내린 벌은 욥이 지은 죄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깊은 뜻도 모르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토로한 것을 꼬집는것이다. 하나님의 높고 깊고 넓은 지혜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소발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욥에게만 적용한다.) 지금 욥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모르는 욥을 미련하다고 판단한다. 욥에게 마음을 바르게 먹고 두손들고 주님을 향해 기도하라고 충고 한다. 한마디로 회개하라는 충고다. 악에서 돌이키고 불의가 깃들지 못하게 해야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지난 괴로움을 다 잊게 될 것이요 생활이 밝아 진다고 권면한다. 이럴 때 희망이 생기고 평안해진다고 말한다. 안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욥이 회개하지 않으면) 눈이 멀어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악한 사람의 희망이라고는 마지막 숨을 잘 거두는 일 뿐이라고 말한다. (욥이 죽기전에 잠시라도 자신을 내버려 달라고 간구한 내용을 비꼬는 것 같다.)

//친구들은 욥에 대한 정죄를 점점 더 당연시 한다. 정죄 말고는 이 상황을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깊고 높고 넓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마치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양 욥을 정죄한다. 소발의 모습에서 소위 믿음 좋다는 사람들의 날선 혀를 보게 된다. 우리는 까닭없는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고통받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심을 알아야 한다. 바울의 권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자. 낮은 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수 밖에 없다.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온유한(겸손한) 자들이 누리는 복에 동참하는 길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낮아지는 것이다. 가난과 애통과 온유가 복인데 이들과 함께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바울이 말하는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긍휼(자비)를 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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