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3:20-14:22

욥기 13:20-14:22

욥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욥이 바라는 것은 두가지. 첫번째는 자신을 치시는 하나님의 손을 거둬주시기를 두번째는 하나님 부재의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곧 하나님의 응답을 바란다.

욥은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청한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묻는다. 잘못을 알아야 돌이키기라도 하지. ㅠㅠ 더군다나 지금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욥의 입장에서는 주님이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욥은 주님의 위로를 바라는데 하나님은 욥을 공격한다. 욥은 어릴적부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조받아 자신이 걸레처럼 되었다고 한탄한다.

욥은 인생이 짧고, 괴로움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피었다 시드는 꽃이요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한다. 이런 미미한 자신의 인생을 주님이 살피시는 이유는 묻는다. 존재가치가 없는 자신을 심판대에 세우시는 이유는 묻는다.   (주님만이 불결한 것에서 정결한 것을 나오 하실 수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주님은 인생의 년수를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러니 자신도 짧고 짧은 인생의 남은 기간동안 숨을 좀 돌리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나무는 찍혀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뿌리가 그루터기가 흙에 묻혀 죽은 것 같아도 물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싹이 나지만, 인생은 한 번 죽으면 사라진다고 노래한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욥은 자신을 지옥에라도 좋으니 잠시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의 년수가 차서 죽을 때 다시 기억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한다. 욥에게는 죽는 것이 더 좋은 때다. 고난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때 주님이 자신 다시 불러주시길 간구한다. 주님 앞에서면 주님이 자신을 기뻐하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주님 앞에 서면 주님이 자신의 죄를 살피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님께서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자루에 넣어 봉하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잘못한 사람들은 삶의 희망이 없다. 주님 앞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지옥에 떨어지면 자손의 영광이나 비천과도 끊어진다. 혼자 아픔과 슬픔을 느껴야 한다.

//욥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졌으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인생의 년수를 정하신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남은 세월동안은 고통에 대한 집행유예를 간청한다. 구약에 면면히 흐르는 가르침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신다는 ‘인과응보’다. 욥도 이원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욥은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가장 멀리있기로 으뜸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허물과 죄가 어디 없겠냐마는, 그래도 하나님이 욥을 세상에서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 악에서 멀리 떠났다고 인정하셨으니, 심판대 앞에 선다면 욥이 가장 먼저 구원을 받아야 마땅하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욥은 이 하나님의 자비에 자기 생명을 건다. 욥이 자신감을 가지고 심판대에 서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성도도 하나님의 심판대에 자신있게 설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