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6:1-16

욥기 16:1-16

욥이 엘리바스에게 대답한다. 욥은 엘리바스가 하는 말을 이미 많이 들었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자신에게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괴롭힐 뿐이라고 말한다. 제발 이런 헛소리를 집어치우라고 말한다. 위로는 고사하고 무엇에 홀려서 자신을 괴롭히는지 묻는다. 만약 친구들이 자신의 처지가 된다면 욥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지혜로 아무리 격려하고 위로한다고 해도 이 고통과 아픔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욥은 자신은 섣부른 말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욥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이 주님이 자신을 치신 증거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주님이 욥을 치셨다는 이유로, 욥이 지은 죄로 벌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그래서 욥을 경멸하고 정죄한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치신 것은 맞지만 자신은 폭행을 저지른 일이 없으며, 자신의 기도는 언제나 진실했다고 말을 한다. 

//얘기는 돌고 돈다.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정죄하고, 욥은 언제나 진실(정결/정직)했지만, 즉 무죄지만 이유모를 고통을 받고 있다고 대답한다. 욥에게는 이런 큰 믿음이 있었다. 중국어 성경에서 욥은 約伯(약백)이다. 욥(Job)에서 음을 빌려왔는데 ‘약속의 맏이’, ‘믿음이 크다’로 의미적으로도 잘 맞는 이름이다. 친구들과 다르게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사람의 말로는 결코 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 있음을 깨닫는다. 욥은 자신의 정결함을 주장한다. – 예수께서는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욥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릴 시간이 멀지 않다. – 시편 119편에서 시인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주의 말씀에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한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사람이, 곧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냥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 끝에 붙인다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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