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8 (1-21)
빌닷이 욥에게 입다물라고 말한다. 욥이 고통중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자 빌닷은 발끈한다. 회개도 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욥의 행동은 회개를 촉구하는 자신들의 말을 우습게 (자신들의 지혜를 어리석게)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빌닷은 욥이 악하기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확신한다. 욥이 밝히던 빛은 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욥이 자기 꾀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스스로 쳐놓은 덫에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국은 죽음이다. 부자였던 욥이 굶주리고 주변에 재앙이 늘 도사리고 몸도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이 믿음의 세계에서 죽음의 통치자에게로 끌려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행을 의심치 않는다. 사람들도 더 이상 욥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후손도 끊길 것이다. 욥이 악한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결말을 맺은 것을 보고 온 세상이 (동양이나 서양에서도) 놀라고 두려워 할 것이라고 말한다.
//회개도 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욥에게 발끈하는 빌닷. 빌닷은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이 빌닷(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욥은 달랐다. 설령 욥 자신이 유죄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주님께 매달려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 이야기를 소환해 보자.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로움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아갔고,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다. 예수께서는 세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고, 바리새인의 의로움은 인정하지 않으셨다. 빌닷과 욥은 바리새인과 세리와 닮은 꼴이다 . 고통이 없다고 감사하며 자신의 의(지혜)를 자랑하는 빌닷은 자기 상을 이미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높이는 언행이기 때문이다. 반면 고통 중에 기도하는 욥은 세리와 같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낮아진다.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멀리한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인정한 욥인데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밖에 없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하나님의 자비가 더디다고 세상이 마치 하나님의 자비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담대하자. 우리는 마지막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