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9 (1-29)
욥이 빌닷에게 대답한다. 언제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파멸시키려고 하는지 묻는다. 욥은 빌닷(친구들)의 말이 언어폭력이요 학대라고 반응한다. 그러고도 부끄럽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욥은 고통이 자신의 문제인데 왜 너희들이 감놔라 밤놔라 하느냐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이 자기들은 의롭고, 욥은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 넣으신 분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은 위로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언어폭력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친구들이 자신의 신음과 고통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지 않는 것을 한탄한다. 욥은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자신이 가는 길을 어둠으로 막으신다고 말을 한다.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해서 받아야 할 면류관을 벗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온 몸에 고통을 주셔 소망을 뿌리째 뽑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 삼으신다고 욥은 말한다. 가족도 멀리 떠났다. 친척도 친구도 욥을 버렸다. 종들과 나그네들까지 욥을 몰라라 한다. 아내 조차도 욥을 싫어한다. 남여노소 불문하고 욥을 무시하며 구박한다. 친한 친구들도 욥을 꺼리고 등을 돌린다. 욥은 피골이 상접하여 겨우 연명하고 있다. 욥은 이런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친구들에게 요청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치셨지만, 그렇다고 친구들도 하나님의 자리에서 자신을 픽밥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겹다고 말한다. 친구라면 자기의 신음을 듣고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의 기록에 남겨 달라고 말한다. 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나의 구원자는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분이 땅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죽어 썩어진 다음에라도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욥은 간장이 녹을 만큼 하나님 뵙기를 갈망한다.) 욥은 자신의 말에 친구들이 또 반박하리라는 것을 알고 말한다.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시다. 친구들에게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심판자 하나님을 알라고 촉구한다.
//욥에게 지금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 하나님 뿐만 아니라 친구도 친척도 종들도 심지어 친한 친구와 아내마져도. 그러나 욥이 모든 것을 낯설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욥 자신에 대하여 낯설게 대하는 것이 힘든 것이다. 자신은 변함이 없는데… 몰골만 달라졌을 뿐인데. 그래도 욥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임을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하나님이 낯설면 어쩌랴! 예수님이 다시 오셨을 때, 예수님이 낯설면 어쩌랴!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흔히 보는 예수상의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 낯설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내가 만들어 만든 이미지의 주님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서 배운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해야 한다. 엉뚱한 것을 주님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