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13-22

욥 1:13-22

어느날, 일꾼 하나가 욥에게 달려와서 스바 사람들이 습격해서 가축들을 빼앗아 가고 다른 일꾼들을 죽였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가 끝날 무렵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 갈대아 사람들이 낙타를 빼앗고 종들을 모두 죽였고 자신만 살아서 보고한다고 말을 했다. 이 두번째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왔다. 그는 첫째 아들의 집에 갑자기 광풍이 내리쳐서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모두  죽었다고 보고했다.

하루 아침에 재물과 모든 자녀를 잃은 욥은 애통하며 머리를 땅에 대로 엎드려 경배하며 말했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욥의 반응은 범상치 않다. 욥은 하늘에서 있었던 회의를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반응을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맡기셨다는 것을 아는듯한 태도다. 물론 욥이 이것을 알리 없다. 그렇다면 욥이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생명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복이며,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욥에게 생명은 하나님과의 교제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끈인 생명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았다. 물론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는 것에 애통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애통함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보다 더 클 수는 없다. 욥은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어디 굴곡이 없는 인생 있으랴! 나의 소유는 없다. 내가 주님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는 욥처럼 잃은 복을 몇배로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는  주님이 차려주시는 마지막 밥상을 기대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수종들어 주시는 밥상보다 더 큰 복은 없다. //내 것을 잃은 것처럼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통해야 한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욥 1:1-12

욥 1:1-12

저자는 1절에서 욥을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하고 소개한다. 그리고 저자는 8절에서 이런 평가는 저자의 생각만이 아니라 주님의 평가라는 것을  주님의 말씀으로 반복한다. “이 세상에는 그 사람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성경은 흠이 없고 정직하다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것과 나란히 둔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은 사람들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은데 사람들의 평판이 나쁠 순 없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는 평가도 결국은 사람이 내리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내 평가를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욥이 흠이 없고 정직하다는 것을 자녀들의 생일잔치 후, 자녀들을 위한 성결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실례로 든다. 그만큼 욥은 모든 일에 신중했다. 

그런데 저자는 돌연 욥이 흠이 없고 정직한 이유를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복’에서 찾으려고 했다. 사탄이 세상을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께 복을 넘치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멀리한다고 주장했다. 사탄은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욥이라도 주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감히 단언했다. 그러자 주님은 생명을 제외한 욥의 모든 것을 사탄에게 맡기셨다. 이제 욥은 사탄의 손에 달린듯 하다. 과연 그럴까?

//주님은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맡기셨다. 이것은 생명 만큼은 주님이 주관 하신다는 반증이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에 관해 사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생명’보다 ‘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사탄이 세상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이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도 아주 자신있게 이것을 주장한다. 생명을 당연시하게 여긴다. 마치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대한다. 사실 살아가는데 물보다 공기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물의 소중함은 말하면서도 공기의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못한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그러니 생명을 누리는 그 자체가 복이다. 생명에 더해지는 것은 모두 덤이다. 덤을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탄이 욥에게서 이 근원적인 복인 생명(호흡)을 빼앗아 갈 수 없으니, 하나님과의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 승부는 정해졌다. ////빼앗길 수 없는 단 한가지, 빼앗겨서는 안 되는 단 한가지, 그것은 생명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 곧 하나님과의 교제가 생명이다.

오바댜 1:10-21

오바댜 1:10-21

에돔의 죄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야곱에게 폭행을 저질렀다. –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방관했다. 아니 오히려 유다의 몰락을 기뻐했다. 심지어 이방인들과 같이 침략해 주의 백성의 재산을 탈취했다. 나아가 피난가는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주었다.

에돔에 대한 심판은 당장은 아니다. 주님이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주의 날에 성취될 것이다. 그날 가감없이 에돔이 행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쓴잔을 피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주의 백성중에는 시온 산으로 피할 것이라고 하신다. 시온 산이 거룩한 곳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때 야곱 집이 다시 하나님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다. 불같이 불꽃같이 영광을 얻을 것이다. (계속 타오른다.) 그러나 에서의 집은 검불의 될 것이다. (곧 사그라든다.) 에서의 집에서는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신다.

주님의 백성이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한다. 흩어졌던 주님의 백성, 포로로 잡혀갔던 주님의 백성이 돌아와 가나안 족속의 땅을 차지하고 유다의 성읍들을 차지할 것이다. 구원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땅을 다스릴 것이다.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 형제애에 실패한 에돔은 진멸당하고 만다. 우리 역시 이웃사랑에 실패한다면 어찌 구원자들이 모이는 시온에,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올라갈 수 있으랴. 오직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의인의 회중에 참여할 수 없다. 망한다. //시온 산은 주님의 법이 있은 곳이다. 주님의 법이 있으니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곧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곳이다. 따라서 불순종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는 것과 다름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떠났으니 곧 지옥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올 기회가 주어진다. 이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구원이다. ////곧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계속 타오르는 불꽃으로 사는 것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곧 사그라드는 검불 신세가 된다. 바람에 나는 겨가 아니라 주님의 가시떨기 나무가 되어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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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 1:1-9

오바댜 1:1-9

오바댜가 받은 계시다.

주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 말씀하셨다.

주님은 여러 민족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일어나 에돔을 쳐부수라고 하셨다.

주님은 에돔을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낮추시겠다고 하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경멸받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에돔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에돔은 스스로 높다고 자처하지만 주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로 끌어 내리실 것이다.

주님은 에돔을 샅샅이 털어버리신다.

에돔과 동맹을 맺을 나라도, 평화조약을 맺은 나라도 오히려 에돔을 속이고 정복할 것이다.

에돔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지혜로운 사람이 더이상 없을 것이다. 에돔에는 용사도 더이상 없을 것이다.

//오바댜에게 주신 에돔에 대한 심판. 에돔이 심판받은 이유는 교만이다. 에돔은 여러민족과 동맹을 맺고 평화조약을 맺은 자신들이 지혜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지혜와 평화를 말하는 것이 교만이다. 주님은 이런 에돔에 지혜자도 없고 평화를 담보할 용사도 없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에돔을 교만한 자리에서 탈탈 털어서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낮추시겠다고 하신다. 그냥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경멸을 받게 하신다. ///하나님 없는 지혜와 용기를 말하는 사람은 에돔과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 교만한 자의 결국은 밑바닥이다. 여러 민족과 평화조약을 맺은 에돔의 마지막도 심판인데, 독불장군처럼 군다면 심판을 면하기는 더 어렵지 않겠는가? //// 성도는 사람들과도 평화를, 하나님과도 평화를 맺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어리석은 자요,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교만은 어리석음의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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