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6:1-25
엘리후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곧 죽어도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겠다고 한다. 자기의 모든 지혜를 짜내서라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밝히겠다고 말한다. (주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있으리요. 그냥 건전한 세상 지식에 불과하다.) 6절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은 악한 사람을 살려 두지 않으시고, 고난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신다고 말한다. 엘리후의 관점에서 욥은 악한 사람인가? 아니면 고난받는 사람인가? 엘리후는 17절에서 욥의 고난/고통이 죄악에 대한 형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21절에서는 이 고통이 욥으로 악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라고 말한다. 엘리후의 한계다. 25절에서 엘리후가 “사람은 멀리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봅니다.”라고 말하는데서 그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엘리후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건전한 세상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밝힐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보다 더 큰 교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