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23

빌립보서 4:1-23

1 바울은 부활을 소망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한다. 빌립보 성도들을 바울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주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2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한다.3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과 같은 멍에를 매었다고 말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멍에다. 이런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힘쓰던 저 여인들을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우라고 당부한다. 또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 모두를 도우라고 부탁한다. 성도는 서로 도와야 하는 관계다. 4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거듭 강권한다. 5 관용의 기쁨을 누리라고 말한다. 주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6,7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가르친다. 주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8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듣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생각하라고 명령한다. 9 바울은 자신이 좋은 본보기라고 말한다. 바울의 봅보기를 따르면 평강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와 함께 계실 것이다. 임마누엘!

10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기억해 주는 것에 대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도울 생각을 하였느나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11 바울은 궁핍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12 가난해도 부유해도 주 안에 거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다. 13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능력주시는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14 그래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잘했다고 칭찬한다. 15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일찍부터 도왔다. 16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 번이나 바울의 필요를 보내 주었다. 17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구제가 자신에게만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유익하다고 말한다. 18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편에 보내 준 것을 받아 풍족하다고 말한다. 바울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라고 말한다. 19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빌립보 성도들의 쓸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축복한다. 20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1-23 바울은 문안을 주고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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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시작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했던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생각해주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고 적는다. 바울의 쓸 것을 도우려는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의 후원때문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비천하거나 풍부하거나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처한 상황이 달라도 주 안에서는 자족하는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의 강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에 있지 않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주 안에서’가 여전히 중심어다. ‘주 안에서’라고 반복하지 않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적는 것은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도 바울 자신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 속으면 안된다. 주 안에 있다고 성도는 욕심을 따라 , 혹은 자기 뜻을 따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주 안에서 능력을 주시면 성도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는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3:12-21

빌립보서 3:12-21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12 바울은 이것을 이미 얻은 것이 아니라고, 이것에 이미 도달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사로잡으셨다고 말하면서도, 바울은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13,14 바울은 반복해서 부활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15,16 성숙한 사람이라면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계속 달려가야 한다고 권면한다. 우리는 어는 단계에 있든지 목표을 향해 그 단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17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본보기로 삼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라고 권한다. 18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애통한다. 19 하나님 대신 자기들의 배를(욕심을) 채우려고 땅의 것만 생각하는 그들의 마지막이 멸망이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성도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21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켜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이다. 

//성도가 다른 사람의 예배적 삶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이유는, 성도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활이라는 끈으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도를 사로잡으신다. 예수께서 성도를 놓치실리 만무하지만 성도도 예수를 붙좇아야 한다. 성도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으니 하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하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서 하늘 시민권을 주장할 수 없다. 부활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예수 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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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1-11

빌립보서 3:1-11

1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한다. 그것도 반복해서 말한다. 명심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조심해야 할 것을 언급한다. 개들, 악한 일꾼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 3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 하지 않는 성도들이다. 4 바울 자신은 육신으로도 신뢰를 살 수 있었다. 5 골수 히브리 사람이요 베냐민 지파요 율법대로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바리새파 사람이기 때문이다. 6 바울은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했을 정도로 율법의 의로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7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 8 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한 것으로 여여,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오물처럼 버린 대신 그리스도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9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율법에서 생기는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한다. 10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이다. 11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다고 고백한다.

//기뻐하라. 그래야 너희가 안전하다. 기쁨과 안전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여기서 안전이라 ‘확실한’이란 의미와 함께 튼튼하다는 뜻이 있다. 곧 기초가 견고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2장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됨과 다른 성도의 예배적 삶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이 기쁨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성도라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다른 성도의 예배적 삶, 다른 성도의 믿음을 위해 내가 희생해서라도 성도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워가야 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신앙의 안전’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부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바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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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5-30

빌립보서 2:5-30

5 바울은 1-4절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면서 성도들이 같은 생각,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사 서로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마음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정리한다.

6-11 바울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어떻게 실천하셨는지 말한다.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종처럼 낮아지셨다. 하나님(신)이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낮추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런 예수를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곧 예수께 하나님이란 이름이 도로 붙여 주셨다.) 그리하여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12-13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에 순종하여서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성도에게 주시는 분도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성령)이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는 분도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14-18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본다. 14-15) 불평과 시비 없이 일을 하라. 그래야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뒤틀린 세대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된다. 그래야 성도는 세상의 빛이 딘다. //예수께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라. 말씀에 순종해야 성도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은 순종뿐이다. 17-18) 다른 성도의 예배적 삶을 위해 희생하라. 바울 자신이 이 일을 기뻐하며,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기를 원한다. 

19-24 갇혀 있는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 대신 보내기를 원한다. 서로의 형편을 아는데 대면 교제보다 나은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와 같은 마음을 품은 (일에만 관심이 있지 않고 서로 돌아보는 마음을 지닌) 아들과 같은 디모데를 보내길 원한다. 물론 바울 자신도 가서 교제하길 원한다.

25-30 그러나 아마 디모데는 바울을 돕는 일이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빌립보에서 자신을 방문한 에바브로디도를 우선 돌려 보내기로 한다. 바울을 방문 에바브로디도는 병으로 죽을 뻔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회복되었다. (형제에게 베푼 하나님의 자비는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서둘러 그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바울은 주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고 존중하라고 당부한다. 에바브로디도를 17절 바울처럼 다른 성도의 예배적 삶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남을 (성도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  첫번째 본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것을 본받은 사람이 바울이며, 에바브로디도 역시 그 뒤를 따른다. 다른 사람의 예배적 삶을 위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이다. 나는 나의 예배적 삶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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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12-2:4

빌립보서 1:12-2:4

12-14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알린다. 바울에게 일어난 일이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자신의 감옥행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근거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바울은 이 복을 누리고 있다. 바울은 예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 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는 사람의 복을 누린다. 바울이 갇혀서도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다.

15-18복음을 전하는 동기는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에는 동일하다. //거짓된 마음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바울을 이해하기 힘들다. 따라서 여기서 거짓된 마음이란 복음/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이라기 보다는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 곧 불순한 의도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바울은 이 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한다.

19-26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우심으로 풀려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바울의 소망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도,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 것이다. 바울은 사나 죽으나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길 원한다. 바울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그래서 죽음도 유익이라고 말한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 살고자 한다. 성도들의 믿음의 발전과 기쁨을 위해 교제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빌립보 성도들을  만나고자 한다. 빌립보 성도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바울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교제, 성도의 교제보다 더 복음스러운 일이 있을까?

27-30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이야 말로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묶어준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로부터 복음에 합당한 삶의 소식이 들려오기를 바라는 이유다. 이것이 복음에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징조고 성도에게는 구원의 증거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복음에 합당한 삶에는 고난도 따른다. 바울은 고난도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이라고 말한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바울처럼 옥에 갇히기도 한다.

2:1-4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이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교제하고 서로 긍휼을 베푸는 사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교제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다. 바울은 거짓으로 해도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기쁘다고 했지만, 성도라면 모든 일에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라고 편지한다.

//길다. 하여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의 기본중의 기본은 성령 안에서 성도의 교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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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한 노력(싸움), 믿음의 경주를 해야한다. 믿음의 경주는 그리스도를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한 마음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체들이 성장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체들이 연합할 때 기쁨이 충만하다고 한다. 나의 기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