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9:1-25

욥기 29:1-25

욥이 이번에도 비유로 말을 이어간다. (비유로 말을 한다는 것을 세상 지혜로 말하는 것이라고 적용했었다. 욥의 한계다. 하여간)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시던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욥은 과거에는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도 주님이 자신을 인도해 주셨다고 노래한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과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셨다고 노래한다. 임마누엘! 욥은 임마누엘 의 증거로 자녀들과 많은 가축들과 풍성한 올리브 기름이 있었다고 노래한다. 욥은 마을에게 존경을 받았다. 젊은이로부터 노인들까지, 원로들과 귀족들도 욥이 행한 일을 칭송했다. 사람들은 욥이 (친구들의 고발과 달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를 잘 보살펴 주었다고 칭찬했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었고 과부들의 마음도 즐겁게 해 주었다. 욥은 늘 정의를 실천하고 매사를 공평하게 처리했다. 욥은 눈 먼 자의 눈이 되어 주었고 저는 자의 발이 되어 주었다. 궁핍한 사람들을 자식같이  돌보았으며, 모르는 이웃의 하소연도 들어주었다. 악인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그래서 욥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것이고 장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욥은 자신은 시냇가에 삼은 나무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욥은 미소로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으며, 웃는 얼굴로 새로운 용기도 주었다. 때로는 왕처럼, 때로는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처럼, 그들이 갈 길을 정해 주곤 했다.

//욥의 (과거의) 선한 행실은 욥이 지금 받는 고통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욥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욥이 선한 행실을 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욥의 과거가 욥의 선한 행실의 열매가 아니라면, 지금 욥이 받는 고통도 욥의 악한 행실에 대한 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풀어낼수없다. //나의 형통이 임마누엘의 증거가 아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보살핌을 받는 것이 임마누엘이다.

욥기 28:1-28

욥기 28:1-28

//지혜와 슬기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라도 찾아낼 수 있지만 지혜와 슬기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피조세계에서 발견되는 보석과 달리 지혜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지혜의 참 가치를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깊고 넓은 바다에 감추어 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혜를 값을 치르고 살 수도 없다. 지혜는 정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와 슬기는 어디에 있는가? 지혜는 피조물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오직 하나님만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혜를 아신다. 우리에게 지혜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슬기는 악을 멀리하는 것이다. 지혜와 슬기가 동격이듯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악을 멀리하는 것이 같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와 슬기의 출발점이다. ////지혜는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예수 안에서만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예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욥기 27 (1-23)

욥기 27 (1-23)

욥이 비유로 말한다. 비유로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욥기의 저자는 욥의 세친구가 세상의 지혜에 빗대어 말한 속담에도 이 ‘비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봐서, 욥이 세친구에게 자신도 세상 이치로 말을 하겠다는 의미일까? 하여간 욥은 하나님의 침묵이 자신을 몹시 괴롭게 한다고 같은 말을 한다. 비유로 말해도 욥의 처지가 달라지지 않는다. 욥의 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욥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말한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정죄한 원수들(마다도 세 친구들)은 악한 자가 받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악인의 벌을 받으라고 저주? 한다. 친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들이 주님께 (욥을 위해 중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정죄한 친구들을 악한 자요 폭력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악한 자들의 결국은 사망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의로운 사람, 정직한 사람이 악한 자들의 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악한 자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공포에 떨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후반부는 친구들이 욥을 정죄할 때 한 말을 욥이 그대로 돌려주는 것 같다. 아니면 친구들의 말이 끼어있든지… 하여간 욥의 말이라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세상지혜를 따라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심판하는 것이 양립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

욥기 25:1-26:14

욥기 25:1-26:14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의 말을 가로 막고 욥에게 하나님 앞에서 감히 의롭다고 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달도 별들도 하나님에게는 밝지도 청명하지 못한데 하물며 구더기 같은, 벌레 같은 인간이 함부로 의롭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작 빌닷 자신은 심판자의 자리에 앉아 욥을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욥이 빌닷에게 대답한다. 욥은 빌닷이 자신의 우둔함을 깨우쳐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지만 비아냥 거리는 투다. 그래서 빌닷에게 누구에게 영감을 받아서 지혜있는 척하느냐고 묻는다. 욥은 빌닷이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그것도 지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감히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한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하나님의자리에 앉지말자. 우리는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되는줄 안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을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간음등등 뭐 대단한 악을 행하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들은 풍월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곧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세상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우리에게 이해가 아니라 믿음이 필요한 이유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