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45-56

마가복음 6:45-56

45-52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편 벳새다로 보내시고 홀로 남아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혼자 기도하시려 산에 올라가셨다. 날이 저물었다. 제자들이 탄 배는 거슬러 부는 바람때문에 노를 젓느라 몹시 애를 써야했다. 이른 새벽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탄 배로 다가 가셨다. 제자들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고 놀라 소리쳤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시며 안심시키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그들은 빵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다.

53-56 예수 일행은 게네사렛 땅에 도착했다. 예수를 알아본 사람들은 온 동네를 다니며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오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마을이든 도시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예수의 옷에 손만 대어도 병자들이 나았다. 

//예수께서 바람을 잠잠케 하신 사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마가가 제자들이 광풍에 놀란 이유를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뎌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이번 사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사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을 해설할 시간도 없이 제자들을 배에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지 않으셨던가? 따라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 진것은, 제자들의 마음이 돌같이 딱딱해 진것은 제자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부재때문이라고 보는게 어떨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축귀와 치유의 경험도 결국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깨닫지 못한다. 마음이 돌같이 딱딱해 진다. 결론적으로 예수와 같은 배에 타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마음에 예수를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우리 인생의 항로도 쉽지 않다. 노를 던져버리고 돛를 만들어 달고 엔진을 만들어 달아도 힘들다. 인생에 필요한 동력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힘겹게 노저으며 항해할 때 주님은 제자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성부 하나님과의 한적한 곳에서의 교제하시던 주님은 제자들을 찾아주신다. 문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물리적 부재가 영적인 부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광풍을 잠잠케 하셨던 주님, 아니 방금 전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셨던 주님은 보이지 않고 맞바람만 느낀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은 마음에 온전히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했다. 그래서 마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돌밭같이 딱딱해졌다 (둔해졌다)고 설명한다. 임마누엘은 교제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님 앞에 나아간다고 해도, 주님만 만져도 상함이 성함으로 바뀌는 치유를 경험한다고 해도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과거의 경험적인 하나님은 (예수님은) 간증에서나 존재하시는 죽은 하나님이 되실 뿐이다.  말씀을 읽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을 늘 구해야 마음이 둔해지지 않는다.

https://quietwaters.blog/202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