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성도는 이미 보내는 선교사다
한국을 방문하면 가끔 선교사를 꿈꾸는 청년들을 만난다. 그들은 선교사로 어던 준비를 하면 좋은지 묻는다. 그러면 저는 항상 교회생활을 잘하라고 조언한다. 교회에 속한 다양한 성도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교제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5년 이상 교회를 섬기다가 나가면 좋겠다고 권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급하지 않다고 말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선교현장에 있으면서 종종 선교후원이 끊어지는 선교사들을 본다. 대부분 후원교회의 담임목사가 바뀌거나, 큰 교회의 경우에는 선교담당 교역자나 장로가 바뀌면서 발생한다. 우리 정서상 교회 안에서도 인맥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요셉을 모르는 바로와 같이 선교사를 모르는 담임목사나 선교담당자들은 현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잠중의 경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담임목사가 자주 바뀌었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어느 분이 그 동안 올림픽 때마다 담임목사가 바뀌었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하셨다. 감사하게도 저희 가족에 대한 후원은 아무 변화없이 지속되었다. 물론 잠중이 파송한 다른 선교사님들에 대해서도 후원이 중단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 잠중이 건전한 교회라는 방증이다.
우리 가정은 물질과 기도의 후원뿐 아니라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2008년 안식년 때는 잠중에 선교관이 없으니 10개월 짜리 전세집을 얻어주셨다. 2년 단위로 전세를 계약하는 한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전세집에 필요한 살림도 채워주셨다. 교회이름으로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신앙의 선배와 후배들 덕분이었다. 우리 가정 이후로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왔던 가정이 또 있었지만 우리와 같은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다. 후배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저는 이 모든 것이 개인적으로 잠중에서 파송받기까지 꼬박 10년을 잠중에서 섬기면서 신앙의 선후배들과 교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가 선교사 후보생들에게 가급적이면 오래오래 교제하고 파송받으라고 권면하는 이유다. 그러나 첫 10년이 평생의 후원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2008년 안식년은 그래서 또 다른 교제의 시작이었다. 15년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싱글 때 교제하던 청년들은 아비와 어미가 되면서, 또 직장을 따라 교회를 떠났고 중직자들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2008년 안식년은 기존의 성도들과의 교제를 곤고히 다지고, 새로운 성도들과 교제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주일학교 때 가르쳤던 학생들이 아비와 어미가 되어 교회가 섬기고 있었다. 이들이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형제자매와 부모가 더 많아진 셈이었다. 풍성하고 다양한 성도의 교제는 교회가 건전하다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제가 건전한 성도들을 만난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다양한 성도들과 부딪히면서 모난 부분이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육신의 부모를 일찍 잃었다. 국민(초등)학교 6학년 때 두 분이 별세하셧다. 그러나 예수 믿고 수 많은 가족을 얻었다. 부모가 없으니 아내에게는 시댁이 없다. 그러나 아내는 잠중을 방문할 때마다 시댁에 방문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잠중에 늘 고마울 따름이다.]
저는 제가 건전한 성도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건정한 성도들과의 연합을 통해 건전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도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동역자들 사이와 현지인들과도 화평해야 한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만 교제할 수는 없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폭넓은 신앙의 교제는 현지에서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성도가 교회에서 선교사 후보생과 교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선교사 후보생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성도의 교제보다 더 좋은 선교훈련은 없기 때문이다. 선교사 후보생과 교제하고, 선교사들과 기도편지로 교제하는 성도는 이미 보내는 선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