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2:34-52

신명기 32:34-52

34-43 원수들이 마실 독주는 주님이 숨겨 놓았던 것이다. 주님이 원수 갚을 때 쓰실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은 주님의 일이다. 원수들이 멸망할 때가 가깝다. 원수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주님은 주의 백성도 심판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주님은 원수들의 신들, 원수들이 피난처를 삼던 반석이 어디 있는지 반문하신다. 원수들이 제물을 바치던 신들이 어디 있는지 비웃으신다. 마침내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심을 알라고 말씀하신다. 주님 밖에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주님만이 생명을 주관하신다. 아무도 주님이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한다.

주님은 친히 심판자 재판관이 되셔서 원수들을 벌하실 것이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원수들이 묻힌 핏값을 갚으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실 것이다. 원수들을 벌하시고 주님의 백성이 지은 죄는 속하여 주신다.

44-47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 모든 노래를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모세는 마지막으로 온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노래와 증언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라고 말한다. 율법은 빈말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말씀을 순종하라. 순종해야만 약속의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라고 거듭 당부한다.

48-52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느보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느보산에서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믿음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굳이 한 번 기록하신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율법은 빈말(헛된 일)이 아니라 생명이다(47). 그러나 율법 자체가 생명일 수는 없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다. 구약의 정신이다. 신약에 와서는 믿음은 빈말이 아니라 생명이다 하고 적용할 수 있다. 믿음자체가 생명일 수는 없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생명이다. //요한의 가르침을 소환하자. 요한은 복음서 (요5:24) 에서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을 옮겨갔다.’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그리고 요한1서 (요일3:14) 에서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고 적용한다. 요한은 믿음을 형제사랑과 동일시 한다. 따라서 율법이 생명이고 믿음이 생명이듯이 형제사랑이 생명이다. (율법을 지키는) 생명이 있어야 약속의 땅에서 사는 것이듯, (형제사랑하는)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느보산에서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다는 기록도 약속의 땅을 지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증거다.  지리적 약속의 땅보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세가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육신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순종에 들어간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모세를 더 이상 믿음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못하는 곳으로 데려가신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

https://quietwaters.blog/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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