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54-8:8

사도행전 7:54-8:8 (공동번역)

의회원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 반면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스테파노는 하늘이 열려있고 하느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인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크게 소리 지르며 귀를 막고 스테파노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 성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치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고소한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에게 맡겼다. 스테파노는 돌을 맞으면서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부르짖고,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다. 스데파노는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사울은 스데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모든 신도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예루살렘에는 사도들만 남게 되었다. 경건한 사람 몇이 스데파노를 장사하고 애도했다. 한편 사울은 교회를 쓸어버리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남녀를 가리지 않고 신도들을 모두 감옥에 쳐넣었다. 흩어진 신도들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다. 빌립보는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군중들은 빌립보의 말을 듣고,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고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빌립보는 더러운 악령을 쫓아냈고 중풍병자와 불구자들을 고쳐주었다. 그 도시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성령충만한 스데반은 하늘을 본다. 그냥 위를 쳐다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본다. 하나님나라를 본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예수를 닮아 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영혼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긴 것처럼 스데반은 영혼을 주 예수님께 맡긴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스데반도 자신을 돌로치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진다. 스데반 안에 예수께서 계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스데반이 살았다는 증거다. //빌립보는 구제를 위해 선택된 7인 중 한명일 것이다. 순교자 스데반도, 빌립보도 구제의 일을 하는 본질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아니 무슨 일을 하여도 어디에 있어도 그들은 신도의 사도적 사명, 곧 보냄을 받은자의 역할에 순종했다. //심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복음은 신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 여러지방으로 전해졌다. 복음의 아니러니다. 복음은 안주하지 않는다. 안주하면 심한 박해를 통해서라도 흩어지게 하신다. 신도들이 가는 곳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축귀와 치유가 일어나고 그 곳 사람들에게 기쁨이 된다. //사울은 의회원들의 결정에 찬동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그는 전통과 관습에 얽매였다. 더러운 악령을 따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박해운동은 복음이 온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지는 촉발제가 되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다. //말씀과 성령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201801

사도행전 7:37-53

사도행전 7:37-53 (공동번역)

스데파노의 변론이(설교가) 이어진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모세가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당신들의 형제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뽑아 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모세가 말한 이 한 예언자가 예수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개자가 되어 생명의 말씀을 받아 전해 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모세가 시나이 산에 가고 없을 때,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들이 송아지 모양의 우상을 만들어 제사하고 즐거워 하자 하느님은 그들을 외면하시고 그들이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내버려 주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사십년동안 희생물과 제물을 제대로 바친적도 없었다고 반문하고, 오히려 몰록신과 장막과 레판 신의 별들을 떠메고 다니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 그래서 너희를 바빌론 저편으로 쫓아버리겠다는 예언서 말씀의 성취다. 우리 조상은 광야에 있을 때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있었다. 증거의 장막은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장막을 물려 받았다. 이 장막은 다윗의 시대까지 이어졌다. 다윗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으로 성전을 짓게 해달라고 간구했지만 성전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사시지 않는다. 예언자가 말씀대로 하늘이 주님의 옥좌요 땅이 주님의 발판이다. 주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도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져 완고해졌다. 여러분도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 박해를 받지 않은 예언자가 한사람도 없다. 의로운 분이 오시리라고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다. 여러분도 바로 그분을 배반하고 죽였다. 여러분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받고도 그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

//스데파노의 논지는 청자들도 그들의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데반은  자신이 모세를 모독한 것이 아니라, 모세도 의로운 분에 대해 얘기 했었고,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분이 예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율법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교도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 바빌론으로 잡혀갔듯이, 그들도 하나님이 보내신 의로운 분을 마침내 배반하고 죽였다고 결론짓는다. 스데반은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져 완고해진 청자들이야 말로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며, 곧 모세를 거역하는 자들이라고 그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스데반의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야 정상이다. 베드로의 첫 설교 때처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하는데…의회원들은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져 완고했다. ㅠㅠ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주여, 나에게서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20180116

사도행전 7:17-36

사도행전 7:17-36 (공동번역)

스데파노의 변론이 이어진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주실 때가 가까워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땅에서 번성했다. 그런데 요셉의 내력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교활한 정책을 써서 학대하였고, 갓난아기들은 내어다 버리게 했다. 모세가 바로 이때 태어났다. 모세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귀여운 아이였다. 섣달동안 아버지 집에서 자랐고 그 부모가 내어다 버린 뒤에는 파라오의 딸이 데려다가 양자로 삼아 길렀다. 이렇게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학문을 배워 말과 행동이 뛰어났다. 모세는 마흔살이 되었을 때, 자기 동족을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날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악밥받는 동족의 앙갚음을 해 주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께서 자기 손을 빌려 동족을 구해 내려 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줄 알았으나 그들은 미처 깨닫지 모했다. 다음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끼리 싸우자 형제끼리 왜 서로 싸우냐고 물었다. 자기 동료를 학대하던 사람이 모세를 밀치며,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고 따졌다. 그는 모세가 어제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도 알고 있었다. 이말을 듣고 모세는 이집트에서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가서 살았다. 그곳에서 두 아들을 낳았다.

사십년이 지난 어느날, 모세는 시나이 산 광야에 있었다. 그때 한 천사가 가시나무 덤불 불길 속에 나타났다. 모세는 깜짝 놀라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갔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제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이다.’ 모세는  음성을 듣고 두려워서 더 이상 바라보지 못했다.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니 신고 있는 신을 벗으라고 명하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주님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학대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신음소리도 들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님이 그들을 구해 내려고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셨다. 이집트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은 사십년전 모세를 배척했지만, 주님은 천사를 보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요 해방자로 보냈셨다. 모세는 이집트 땅에서, 홍해를 건널 때, 광야 사십년 동안 여러가지 놀라운 일과 기적을 행하면서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해 냈다.]

//스테파노는(스데반은)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을 배척했지만, 주님은 모세를 배척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를 지도자와 해방자로 보내셨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구원은 이스라엘 자손의 뜻도 모세의 뜻도 아닌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모세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며, 이스라엘 자손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 모사재인이나 성사재천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배척했던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배척했던 예수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우리의 때와 우리의 방법과는 다르다. //스데반은 모세와 하느님을 모욕한 죄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스데반은 모세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귀여운 아이였으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요 해방자라고 말을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는 미칠 수 없다. //스데반의 변론의 논조는 자신은 모세와 하느님을 모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보다 더 위대한 구원자를 이땅에 보내셨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말하기 위해 밑밥을 깔고 있는 중이다.

#2018.01.15

사도행전 7:1-16

사도행전 7:1-16 (공동번역)

대사제가 스데파노를 심문했다.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고발자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스데파노는 답변하기 시작했다. [부형 여러분, 제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아직 하란에 자리잡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을 때, 영광의 하느님은 그에게 나타나 하느님이 일러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지방을 떠나 하란에 자리잡고 살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란에서 이 땅으로 옮겨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손바닥만한 땅도 주지 않으시고 다만 이 땅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때는 아직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없었던 때였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외국 땅에서 사백년 동안 나그네로 종살이 하며 학대를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나라를 심판하시고 그들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여기서 나를 예배하게 하겠다 하고도 말씀하셨다. 할례는 그 계약의 표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아서 팔일째 할례를 베풀었고 이사악도 야곱에게, 야곱은 자기의 열두 아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동생 요셉을 시기하여 에집트에 팔아버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시면서 모든 어려움에서 요셉을 건져내셨다.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에집트 왕 파라오의 총애를 받게 하셨다. 그래서 요셉은 에집트의 총리로 온 왕가를 다스렸다. 그 때 에집트와 온 가나안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 우리 조상들도 먹을 것이 없었다. 야곱은 에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들을 에집트로 보냈다. 욥셉의 형들이 두번째 곡식을 사러갔을 때,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렸다. 요셉은 사람을 보내 아버지 야곱과 일흔 다섯이나 되는 친족을 모두 모셔왔다. 야곱은 에집트에 내려가 거기에서 살다가 죽었다. 야곱의 아들들도 죽을 때까지 에집트에서 살았다. 그들은 세겜에 묻혔는데, 아브라함이 세겜에 살던 하몰 자손에게 은전을 주고 사 두었던 땅이었다.]

//성령의 사람은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다.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말씀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변론할 때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시기 때문이다. 스데파노가 좋은 예다.  //스데반은 성전이나 율법으로 자신의 변호를 시작하지 표않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했다. 율법보다 먼저 주어진 언약을 상기시키고 율법보다 상위법인? 할례를 언급했다. 성전보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함께 하심이 먼저요, 율법보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먼저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성령이 역사하시려면 우리 마음에 말씀이 있어야 한다. 평소 말씀을 읽지 않으면, 보혜사 성령의 역사는 그 만큼 제한 될 것이다.

#2018.01.14

사도행전 6:1-15 (공동번역)

신도들의 수가 점점 늘자 그리스 말을 쓰는 유다인들이 본토 유다인들에게 불평했다. 그리스 말을 쓰는 과부들이 식량배급을 받을 때마다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열두 사도는 신도들에게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 식량 배급에만 골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서 신망이 두텁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구제의 일은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만 힘쓰겠다고 말했다. 모든 신도들은 사도들의 제안에 찬동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파노, 필립보, 브로코로, 니가노르, 디몬, 바르메나, 니골라오를 뽑았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이들에게 안수했다. 하느님의 말씀이 널리 퍼지고 예루살렘에서 신도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수많은 사제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스데파노는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들과 굉장한 기적들을 행하였다. 지혜와 성령을 받아 말하는 스데파노를 논쟁에서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스데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거짓고소를 했다. 결국 스데파노는 의회를 끌려갔다. 의회에 끌려간 스데파노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 같이 보였다.

//신도의 수가 늘자 여기저기 공동체 생활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이것을 가르치는 일보다, 관리에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3천명, 5천명이 주께 돌아온 공동체를 관리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솔직히 7명도 이들을 관리하기에 적은 숫자다. 그러나 신도들의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신망의 공동체요 성령의 능력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다.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사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하느님의 말씀이 퍼지자 신도들의 수가 늘어났다. 많은 수의 사제들도 예수를 믿는 신도들이 되었다.

//식량배급을 하는 일을 위해 뽑힌 스데파노가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들과 굉장한 기적을 행할 뿐 아니라 지혜와 성령으로 예수교를 변론했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성령의 사람이어야 한다. 성령의 사람은 맡겨진 일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일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스데파노 정도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를 하느님 모독 죄로 의회로 잡아갔다. 지혜와 성령으로 논쟁에서 져본적이 없는 스데반을 잡아가다니… 그들은 사람을 잘못 택했다. 스데파노의 얼굴이 마치 천사와 같이 (모세의 얼굴이 광채를 냈던 것과 같이) 보였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천사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