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6:1-19 (새번역)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주님이 하신 모든 말을 두루마리에 기록하라고 명하신다. 주님은 유다 백성이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면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길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옥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자신이 불러 주는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해 주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주라고 명한다. 그러면 백성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드리면서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한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말대로 성전으로 가서 두루마리에 있는 주님의 말씀을 읽었다. 그결과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모든 백성에게 주님 앞에서 금식하라는 선포가 내려졌다.
바룩이 두루마리를 낭독할 때에 사반의 손자 서기관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도 두루마리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모든 고관들에게 자신이 들은 말을 전했다. 고관들은 바룩에게 두루마리를 가져와 낭독하게 했다. 바룩이 고관들에게 두루마리를 낭독하여 들려주니, 고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금님께도 아뢰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는지 물었다. 바룩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말씀을 모두 불러주었고 자신은 그것을 받아 먹으로 두루마리에 받아썼다고 대답했다. 고관들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아무도 모르게 숨으라고 말했다.
//기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반응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먼저고, 기도가 따라오며, 결국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며,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말씀을 받아적게한 이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도 바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바른 기도를 하지 못하는/않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바룩이 두루마리를 읽자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금식이 선포된다. 누가 내렸지? 한편으로 고관들은 바룩에게 두루마리을 다시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금식/기도 대신에 왕에게 이것을 아뢰는 문제로 고민한다.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적용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지는 두번째다. 고관들은 금식 대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대신) 왕이 어떻게 생각할지 근심한다. 바울은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적용한다. //기도란 말씀에 대한 바른 반응과 순종을 구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면 나와 공공의 필요에 따른 간구는? 주님은 이미 아신다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 간단하게 아뢰면 된다. 자녀가 아버지께 하듯.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가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과 자세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