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9:23-39

예레미야 49:23-39

다마스쿠스를 향한 주님의 신탁이 이어진다. 다마스쿠스도 주님이 보내시는 심판 앞에서는 평안과 용기를 잃는다. 공포에 고통과 슬픔에 사로잡힌다. 모든 군인이 전멸당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성벽과 벤하닷 궁궐이 불타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어서 게솔과 하솔에 대해서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바빌로니아가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게달과 하솔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도피하고 도주하고 숨어야 한다. 국제정세에 휩싸이지 않고 멀리 떨어져 태평성대를 누렸건만 주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그 땅은 황폐한 곳이 되어 들짐승의 소굴로 변해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엘람도 심판하신다. 엘람은 활을 잘 쏘는 용맹한 나라였지만 주님은 그들을 사방을 흩어버리신다. 엘람 사람들은 여러나라로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피난처가 없다. 왕과 고관들도 마찬가지로 멸절당한다. 엘람도 주님이 다스리실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엘람의 포로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다마스쿠스, 게달과 하솔, 엘람도 주님의 통치아래 있다. 이들을 심판하는 도구인 바벨론도 마찬가지다. 열방을 향한 주님의 신탁은 주님만이 하나님(신)들의 하나님(신)이심을 선포한다. 주님은 지역적이지 않고 초월적이시다. 굳이 열방에 대한 심판을 구구절절 언급하는 이유는 주의 백성들도 주님을 만군의 하나님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엘람의 보좌도 주님의 차지다. 역으로 말하면 엘람 왕을 세우신 분도 주님이시다. 선하든 악하든 주님이 통치자들을 사용하신다. //이번에도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신다. 주님은 목적은 멸절이 아니다. 죄(악)을 멸절 시키시지만 적은 수라도 주님의 신탁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보살피신다. 그래서 주님의 다스림으로 불러모으신다. 돌아오게 한다는 말씀은 그냥 지리적 귀환이 아니다. 주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돌아갈 곳이다. 우리도 온전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해야 한다.

예레미야 49:1-6

https://quietwaters.blog/2018/11/29/

// 암몬에게 내린 재앙은 형제의 땅을 빼앗은 것과 몰렉신으로 말미암는다. 암몬은 또 비옥한 땅과 재물을 의지했다. 사랑이 없고, 우상을 섬기고, 물질을 의지하는 자의 몰락이다. 아니 단순한 몰락이 아닌 심판과 벌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어김없이 주어지는 복음은 죄값을 치른 후다.

예레미야 48:36-47

https://quietwaters.blog/2018/11/28/

// 복음은 주님의 마음이다. 교만한 모압에 대해서는 모압의 멸망을 선언하시지만 훗날 모압의 후손들이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신다. 불순종에 대한 심판과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의로우신 주님의 심판은 어김없다. 한편으로 주님은 훗날 (마지막 날) 순종하는 모압 후손들에 대한 회복도 약속하신다. 모압이라는 나라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혈통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모으시지 않는다. 공의로우신 주님은 자비도 어김없이 베푸신다. 복음이다.

예레미야 48:26-35 (새번역)

모압에 대한 신탁이 길게 이어진다. 모압이 심판받는 이유는 자만이요 술취함이다. 주님은 이런 모압을 조롱거리가 되게 하신다. 주님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조롱할 정도로 교만하여 우쭐대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거만을 떠는 모압을 벌하신다. 주님은 마음이 아프지만 허풍과 거짓의 모압을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8/11/27/

모압은 혈육인 이스라엘을 조롱할 정도로 자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모압을 성에서 쫓아 내신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모압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모암의 교만함을 안다. 허풍뿐인 모압이다. 그의 입에는 거짓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모압의 멸망을 애곡하시겠다면 삐꼰다. 모압은 애도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통곡에 통곡을 더하신다. 기쁨과 흥을 빼앗으신다. 향기나고 깨끗한 술은 빚을 수도 없다. 폐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술취함으로 시작한 모압은 술취함으로 망했다.)

주님의 신탁에도 불구하고 모압의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결국 교만이라는 모압의 정체성을 따르는 자들이다.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주님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예레미야 48:11-25

예레미야 48:11-25 (새번역)

모압에 대한 신탁이 이어진다. 모압은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않은 최상급 술이지만, 주님이 술을 옮겨 담을 것이라고 하신다. 최상급 술은 찌끼가 섞이고 악취가 나서 먹지 못할 술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모압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모압의 재난은 속히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모압은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라고 불렸는데 부러지고 말 것이다. 모압은 수치를 받고 황폐해 질 것이다. 모압의 뿔은 잘리고 그 팔이 부러졌다. 주님의 말씀이다.

//모압은 깨끗하고 향기로운 최상급 포도주라고 스스로 교만하지만, 주님이 흔들어 버리면 가라앉은 찌끼들이 그대로 올라와 탁해지고 악취가 나서 마시지 못하는 술이 된다. 모압은 아직 거러내지 않은 술에 불과했다. 막걸리가 그냥 동동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찌끼를 걸러내야 비로소 탁주에서 동동주가 된다. //모압은 또 스스로를 강하고 아름다운 지팡이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주님이 부러뜨리실 것이다. 사지가 절단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과 혈통적으로 가까워도 소용이 없다. 주님은 불순종의 이스라엘을 벌하시는데 하물며 교만한 모압이랴! //성도라고 다르지 않다. 주님이 흔들어 버리면 우리의 허물과 죄과 슬금슬금 올라온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찌끼를 걸러주는 필터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께 범죄치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노래한다. 우리도 매일 불러야 할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