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2:44-47

느헤미야 12:44-47 (공동번역)

예루살렘 성 봉헌식 날, 십일조를 비롯한 헌물들을 관리할 사람들이 임명되었다. 그만큼 관리해야 할 헌물들이 많이 들어왔다는 방증이다. 사제와 레위인들 몫을 관리해 주었다. 유다인들은 사제와 레위인들이 일을 보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사제와 레위인들은 솔로몬부자의 지시를 따라 정결케하고 하느님을 예배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다. 합창대원과 수위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합창대는 다윗과 아삽의 시대부터 여럿 있었다. 즈루빠벨과 느헤미야 시대에 와서 온 이스라엘은 합창대원과 수위의 몫을 날마다 필요한 만큼씩 대어 주게 되었다. 백성들이 레위인들에 돌아갈 거룩한 몫을 떼어 놓았고 레위인들은 아론의 후손에게 (사제들에게) 돌아갈 거룩한 몫을 떼어 놓게 되었다.

//예루살렘 성 봉헌식은 단회적인 행사지만 유다 공동체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예배하는 일을 맡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고마워 했고,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합창대원과 수위들까지 포함된다. 예배(봉헌식)가 돌봄의 근거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 공동체는 공동체의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오늘날에는 성도모두가 예배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피차의 삶을 돌아보고 챙겨야 한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가 아니라 솔로몬부자의 지시를 따라서 정결예식을 행했다고 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모세의 율법은 성막에서 제사를 드렸고, 솔로몬 때는 성전에서 드렸다. 환경이 달라지면 정결케라는 근본은 바뀔 수 없으나 세부규정은 달라질 수 있다. 교회의 전통도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느헤미야 12:27-43

느헤미야 12:27-43 (공동번역)

예루살렘성 봉헌식을 올리게 되었다. 봉헌식을 위해 레위인들을 찾아내어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바라를 치며 거문고와 수금을 뜯으며 감사 노래를 불러 봉헌식을 즐겁게 올리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예루살렘 주변에 살고 있는 레위인들을 모아 합창대를 꾸렸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백성들과 함께 성문들과 성에서 정결의식을 올렸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도자들을 성곽 위로 올라오게 하고, 찬양대를 둘로 나누어 성벽 양쪽방향으로 돌게 했다. 두 찬양대와 지도자들의 행렬은 양 다니는 문에서 만나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갔다. 그날에 많은 제물을 잡아서 바치며 사람들은 기뻐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기쁨이 너무도 벅차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함께 기뻐했다. 그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예루살렘에서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43절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기쁨이 너무도 벅차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함께 기뻐하니 그 기뻐하는 소리가 예루살렘에서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라. 평소에는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찬양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는 반증인가? 아니면 너무나 큰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인가? 하여간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기쁨은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다. 나의 기쁨을 위해 다른 가족이 희생된다면 그 기쁨이 오래갈까? 아니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가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자신의 방식으로만 일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기적이고 소유욕이 심한 사람이 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서적 필요를 채울 수 없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희열의 공동체 107쪽) 골통령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수사가 아닐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소식이 온 나라에 멀리까지 울려퍼지면 좋겠다.

느헤미야 12:1-26

느헤미야 12:1-26 (공동번역)

귀환인들의 명단이 다시 기록된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이름이 기록된다. 에즈라(에스라?) 이름이 앞 부분에 나온다. 사제단장들과 일족의 이름에 이어 레위인들의 이름이 열거 된다. 레위인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특별히 찬양하는 일을 맡은 일가가 소개된다. 본문 마무리에 레위 가문 중에 하느님의 사람 다윗의 지시를 따라 감사 찬송을 부른 설명이 나온다. 수위실에서 문을 지키는 사람도 나온다. 이들은 요야킴 시대 총독 느헤미야와 사제요 선비인 에즈라 시대에 활동한 사람들이다. (귀환인들의 명단을 여러번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4절 다윗의 지시를 따른 감사 찬송. 아마도 다윗이 지은 시편 찬송이 아닐까. 그러면 그냥 시편이 아니고 굳이 다윗이 지은 시편으로 감사 찬송을 했을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니,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감사 찬송을 했다고 생각하자. 혹은 다윗이 예배 때 드리는 찬양의 순서와 형식이 체계화 하였고 그들은 이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넣어주신 성령의 감동으로 사는 것은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일상의 예배와 함께 형식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려야 하는 예배도 있음을 일깨워 준다.

느헤미야 11:1-18

느헤미야 11:1-18 (공동번역)

백성의 지도자들과 일반백성 가운데 십분의 일만 제비 뽑아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다. 십분의 아홉은 지방 성읍들에서 살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았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은 유다지방 어른들과 이스라엘 사제, 레위인 성전막일꾼 솔로몬의 종들의 후손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은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백성의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 가운데 십분의 일만 제비 뽑아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은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서울지역 아파트에 당첨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예루살렘 입성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터전을 떠나 이제 막 성벽이 재건된, 여전히 정비되지 않은 곳으로 이사와서 자기들이 살 곳을 다시 세워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다. 교회를 수평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신자들이 교회에 적응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먼저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희생적 사랑이 요구된다.새로 들어 온 사람들을 칭찬하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성벽재건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고, 내부적으로 어려움이 훨씬 많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