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32-37

느헤미야 9:32-37 (공동번역)

레위인 지도자들은 지금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처롭고 불쌍함을 돌보셔야 할 때라고 기도한다. 하느님을 언약에 신실하신 하느님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느님의 백성이 겪은 고난이 작지 않다고 말한다. 이 모든 고난이 하느님의 잘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며,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느님의 책망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게 하시고 기름진 땅에 살도록 복을 받았으면서도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고, 그 악한 행실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결과가 지금의 종살이다. 약속의 땅에서 조차 종살이를 하고 있다. 약속의 땅에서 나는 풍성한 소출은 죄를 벌하려 세우신 임금들에게 바쳐야 하고, 임금들이 백성들을 맘대로 부리는 고역을 치르고 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고난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러나 고백과 같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자초한 일이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도 않고 하나님의 책망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결과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복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종살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어떻게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말씀을 마음에 두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12/

느헤미야 9:22-31

느헤미야 9:22-31 (공동번역)

하느님은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영토를 주셨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후손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불어나게 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와 차지하게 하셨다.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가나안 사람들을 굴복시켜 주셨다. 기름진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하시고 배불리 먹으며 흥청거리게 하셨다. 그러다 어느덧 엇나가며 반역까지 하게 되었다. 하느님이 주신 법을 내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타이르는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무엄하고 발칙하게 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내맡기셨다. 하느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원수들에게 억압받게 하셨고, 그들이 주님께 부르짖으면 사사를 보내주셔서 원수들에게서 건짐을 받게 하셨다. 이것이 반복되었다. 하느님이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의 법대로 살라고 아무리 타이르셔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기어이 고집을 부리고 하느님께 등을 돌린채 하느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오랜 세월 참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해 타이르셨지만 그들이 들으려 하지 않자 결국 여러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다. 그래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 모조리 쓸어버리지 못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대로 살라고 예언자들을 보내 가르치시는데 주의 백성들이 기어이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으신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요, 우리에게는 은혜다. 그러나 이 은혜를 누리는 자는 적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구원이 천국과 동일시 된다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서 떨어진 것이다. 불완전 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려는 적은 무리들만이 구원을 누릴 것이다. //모조리 쓸어버리지 않으시고 우리 주 예수를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에 청종하게 하소서.

느헤미야 9:12-21

느헤미야 9:12-21 (공동번역)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밝혀주셨다. 친히 시나이 산에 내려오셔서 말씀을 내려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른 관례와 어김없는 법령과 좋은 규정과 계명이다. 하느님의 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가르쳐 주셨다. 모세를 통해 계명과 규정과 법을 내려주셨다. 배고픈 백성들에게 만나를, 목마른 백성들에게 바위에서 물을 터뜨려 마시게 하셨다. 그리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차지하고 살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선조들은 거만해졌다. 고집을 부리고 하느님의 계명에 복종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크신 능력을 보고도 하느님의 법에 복종할 생각은커녕 고집만 세어져 종살이 하던 이집트로 되돌아 가려고 했다. [그래도 하느님은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어떤 죄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애처롭고 불쌍한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신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고 끝없이 사랑하신다.] 이스라엘 선조들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자신들의 하느님이라고 외쳤다. 무엄하고 발칙한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마냥 불쌍히 보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여전히 인도하시고 밝히셨다. 지혜롭게 행하라고 선한 영을 내려주셨고 굶주릴세라 만나를, 목마를세라 물을 주셨다. 사막에서 사십년을 하루같이 옷이 해질세라 발이 부르틀세라 아쉬운 일 하나 없게 돌보셨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받고도 거만해져셔 고집을 부리는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대신 종살이 하던 이집트로 되돌아 가겠다는 이스라엘 백성.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끝없이 사랑하신다. 언약에 신실하신 이 사랑 때문에 우리도 산다. 우리 역시 가장 좋은 것 성령을 받고도 말씀과 성령에 복종하는 대신 세상의 흐름에 따라 세상 복을 누리겠다고 고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역시 언약에 신실하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산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은혜 공동체에 머물러야 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을 개인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공동체적으로 인도하고 길을 밝힌다. 예수의 길도 (성령의 인도도) 마찬가지다.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교제가 중요한 이유다. //부흥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11/

느헤미야 9:5b-11

느헤미야 9:5b-11(공동번역)

야훼 하느님을 기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하느님은 영원히 (옛날부터 길이길이) 노래할 수 없을 정도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의 이름이 위엄차고 높으시다. 야훼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만물에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분이시다. 자연만물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이 하느님이 아브람을 택하시고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한결같은 마음을 보이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의리를 지켜 그 약속을 이루셨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고생한 신음과 홍해에 막혀 아우성 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이집트 백성들에게 놀라운 일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셨다. 하느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식, 뒤쫓던 자들은 거센 물결에 잠기게 하셨다.

//말씀은 회개를 불러오고, 회개는 다시 말씀 앞에 서게 한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상기시켜 준다. 우선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려준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푸신 은혜에 대해 다 기록할 수 없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의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할 도리도 없다. //이 의리 있는 하나님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 역시 신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 가운데 은밀하게 내뱉는 신음소리도 들어주시고, 우리 공동체가 당한 어려움에 아우성치는 소리도 들으시고 함께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성령에 이끌려야 한다.

느헤미야 9:1-5a

느헤미야 9:1-5a (공동번역)

말씀은 회개를 불러 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베옷을 걸치고 흙을 뒤집어쓴 채 단식을 하기 위해 모였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다른 민족들과 맺은 관계를 다 끊고, 저희의 잘못과 선조들의 죄를 고백했다. 하루의 사분의 일은 하느님 야훼의 법전을 읽고, 사분의 일은 하느님 야훼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했다. 레위인들이 서는 단위에서 예수아 빈누이 카드미엘 스바니야 분니 세레비야 바니 그나니가 하느님 야훼께 죄를 고백했다. 레위인인 예수아 카드미엘 바니 하삽니야 세레비야 호디야 스바니야 브다히야가 일어나 야훼 하느님을 기리라고 외쳤다. 

//말씀(법)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말씀을 읽은 시간 만큼 회개하게 되어있다. 우리의 회개는 막연하지 않다.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 회개다. 하나님을 기리는 것이 회개다. 그러니 회개가 곧 예배다. 예배는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니 예배는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