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8:9-18

느헤미야 8:9-18 (공동번역)

온 백성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모세의 법전에 기록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며 울었다. 총독 느헤미야와 선비요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백성에게 이날은 하느님 야훼께 바친 거룩한 날이니 울며 애통하지 말라고 말했다. 오히려 가서 잔치를 차려 배불리 먹고 마시라고 권했다. 미처 먹을 것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그들 몫도 챙겨주라고 당부했다. 이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야훼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레위인들과 이날은 거룩한 날이미 슬퍼하지 말고 조용하라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온 백성은 가르침을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돌아가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없는 사람에게도 몫을 나누어주면서 먹고 마시며 좋아했다.
다음날,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일반 백성의 대표들이 선비 에즈라에게 모여 법전에 기록된 말씀을 공부했다. 말씀을 공부하다가 야훼께서 칠월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분부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각 성읍과 예루살렘에 초막절을 지키도록 전갈을 보냈다. 백성들은 나가서 자기 초막을 만들어 지켰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이 성대한 절기를 지키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시대 이후로 그날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에즈라는 초막절 기간동안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느님의 법전을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은 팔일째 되는 날 규정대로 폐회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울며 통곡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자리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의 증거는 무엇인가? 온 공동체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도 몫을 나누어주는 나눔의 잔치여야 한다. 있는 자들만의 잔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않고, 사람들도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에스라와 말씀을 공부하다가 초막절을 적용하기로 했다. 초막을 짓고 지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문자적으로 적용할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절기내내 법전(말씀)을 (가르치고) 들었다는 것은 적용이 가능하다. 말씀은 곧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성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요15:10) //형식은 담을 수 없어도 말씀을 담을 수는 있다.

느헤미야 8:1-8

느헤미야 8:1-8 (공동번역)

//주인공은 에스라로 바뀌었다. 성벽재건과 달리 공동체 재건, 종교적 재건에는 행정가나 정치적 인물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공동체 재건을 선비(학사) 에스라에게 맡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모세의 법전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한 이유다. //에스라가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한 일을 특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법)을 귀담아 들었다. 말씀(법)을 읽는 자는 하나님을 칭송하였고 말씀을 듣는 자는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말씀은 듣기만 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귀환한 백성들 중에는 바빌론/페르시아 말이 오히려 편해서 옛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었을 것이고 옛말을 알아 듣는 백성들도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라와 함께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레위 사람들도 있었고, 백성들 사이를 다니며 풀이해 주는 레위사람들도 있었다. //예배는 … 먼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예배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하루 예배의 순간 P121-122)

느헤미야 7: 61-73

느헤미야 7: 61-73 (공동번역)

귀환자들 명단에는 가문이 밝혀지지 않아 이스라엘 후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환한 사제 가문에도 족보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다 가문에 장가들어 족보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제직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대사제가 임명되어 우림과 둠밈으로 결정할 때까지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귀환자 등록부와 비교해 주민등록을 마치고 보니 온 회중이 사만이천삼백육십명에 종 칠천삼백삼십칠명이나 되었다. 남녀 가수도 이백사십오명이 따로 구분되어 기록되었다. 말이 칠백삼십육마리, 노새가 이백사십오마리, 낙타가 사백삼십오마리, 나귀가 육천칠백이십마리. 각 가문의 대표들은 공사에 필요한 돈을 바쳤다. 각하 (느헤미야?)도 금화 천 드라크마, 은 오백 미나, 쟁반 오십개, 제복 삼십 벌을 바쳤다. 각 가문의 대표들이 바친 것은 금화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이백 미나나 되었고, 일반 백성이 바친 것도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 미나, 제복이 육칠십 벌이나 되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일부 일 백성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고, 합창대원들과 수위들과 성전막일꾼들은 예루살렘에 딸린 촌락들에, 그리고 나머지 일반 백성들은 저희의 성읍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호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 특별히 제사장의 경우에는 사역과 혜택이 제한 되었다.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제사장들의 자격을 확인하기로 했다. 사람이 작성한 호적이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아신다. //특이하게 가축들도 등록하였다. 가축의 규모를 보면 귀환한 유다 공동체가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가난한 동족에 대한 착취가 없었어야 했다. 성벽재건에 일반백성에 바친 금화와 은의 양이 가문의 대표가 바친 양과 같다. 대표들이 일반 백성이 모은 만큼 채운 모양새다. 대표들이 자신들이 바친 만큼 백성들에게 착취했다면 그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대표나 일반 백성이나 자원하는 마음이었기를… //밤새 계엄농단이 있었다. 계엄을 사욕을 위해 선포하는 일이 가능했다니… ㅠㅠ 이제라도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펼쳐주길 바랄뿐이다.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 짓는다.(잠29:2)

느헤미야 7: 39-60

느헤미야 7: 39-60 (공동번역)

//귀환자들의 명단이 이어진다. 성전막일꾼들이 함께 귀환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천한 신분이었다. 사실 귀환한 유다 공동체에 이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유다인들은 성전 막일을 위해서 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함께 귀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성전막일꾼 입장에서는 신분세탁을 하고 바빌론/페르시아에 그냥 머물러 사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이들이 귀환에 참여한 것은 순전히 성전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준비로 섬길 수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전에서 일하는 기쁨이 막일꾼으로 천대받는 것보다 나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찬양대와 동일하게 하나님나라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모두가 귀한 조각들이다. 교회에서 숨은 봉사자로 섬기는 분들께도 동일한 기쁨이 있기를…

느헤미야 7:1-38

느헤미야 7:1-38 (공동번역)

성수축이 끝나자 느헤미야는 성문을 만들어 달고 수위드를 배치했다. 그리고 동생 하나니와 성채수령 하나니야에게 예루살렘 수비를 맡겼다. 느헤미야는 하나니야가 진실한 사람이고 하느님 두러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을 해가 뜨거워 진 후 열고 해지기 전에 닫게 했다. 예루살렘 성민이면 누구나 보초를 서게 했으며, 집마다 제 집 앞에서 보초를 서게 했다. 예루살렘 성은 컸고 넓었으나 새 집을 세워야 만큼 인구는 얼마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주민등록을 하도록 느헤미야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느헤미야는 첫 귀환민들의 등록부를 찾았다. 거기에는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다가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 성읍으로 돌아온 지방민들의 가문과 인원이 적혀있었다.

//느헤미야는 물리적 성벽을 수축하고 지켰다. 느헤미야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지켜야 한다는 무게감을 느낀 것 같다. 사실 성벽 수축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성벽을 유지하는 것은 남은 평생의 과제다. 느헤미야가 십이년 동안 유다 총독을 지냈다고 했으니 느헤미야가 정말 바랐던 것은 물리적 성벽의 수축보다는 유다 공동체의 회복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불법적 돈놀이를 하지 않고, 과도한 세금으로 백성들을 착취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할 수 있도록 새 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실시하도독 느헤미야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느헤미야로 하여금 유다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 속에 꿈꾸게 하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 교회 공동체다. 내 집 앞은 내가 지켜야 하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