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1-13

마태복음 8:1-13 (공동번역)

예수께서 산 위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예수를 따랐다. 그 때,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절하며, 자신을 깨끗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께서  그에게 손을 대시고 깨끗하게 되어라 말씀하셨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예식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한 백부장이 예수께 나와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사정을 아룄다. 예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백부장은 같이 갈 필요 없이, 예수께서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낫겠다고 아룄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며 따르는 무리 앞에서 백부장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열방에서 사람들이 아즈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백부장의 믿음대로 될 것이라며 돌려보냈다. 과연 바로 그 시간에 백부장의 하인이 나았다.

//권위 있게 가르치신 예수를 선생으로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수를 주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가르침 너머의 믿음 요구하는 호칭이다.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없었던 나병환자가 예수께 나아간 것과 예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신 것 모두 통념을 깨는 행동이었다. 이것이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율법대로 공동체에 복귀하게 하셨다. 자신은 이 일로 마을에 당분간 들어갈 수 없음을 아셨지만, 빛으로 행하면 부정한 것과 접촉해도 부정해지지 않고, 오히려 부정한 것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 또한 놀랍다.

예수님이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무엇인가?
1. 이방인도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께 나아 올 수 있다는 믿음
2.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간구할 수 있다는 믿음
3. 모든 만물이 (심지어 병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믿음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예수께서는 이방인들도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으면 아브라람의 자손의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신다. 오히려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심지어 잔치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늘 잔치 참여자격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믿음으로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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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13-29

마태복음 7:13-29 (공동번역)

많은 사람이 들어가는 넓은 문과 길은 멸망으로 이끈다. 찾는 사랍들이 적은 너무나도 비좁은 문이 생명으로 이끄는 문이다. //세상의 조류를 거스릴 수 있어야 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넓은 문과 넓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양의 탈을 쓴 굶주린 이리들이다. 그들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나쁜 나무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열매를 보고그 교회 지도자들을 분간해야 한다. (거짓 교회지도자들은 입으로는) 예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지만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귀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말하지만 자기 상을 이미 받은 자들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이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실천(순종)이 없는 사상누각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에 듣는 무리가 놀랐다. //저자 특강 대신 거짓 예언자들의 참고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https://qiuetwaters.blog/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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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1-12

마태복음 7:1-12 (공동번역)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그래야 우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우리가 주님의 판단을 받는다면 부족함이 보일 수 밖에 없다. 형제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위선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우리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어야 형제의 눈에서 티를 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 눈 속의 들보를 깨닫는다면 형제의 티는 덮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말라고 하신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값진 것도 보화가 아니라 쓰레기에 불과하다. 아니 독이 될 수도 있다.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주시는 분이 하늘 아버지이시다. 악한 사람도 자기 자년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의 정신이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심판자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심판대에 서야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판석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경우 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된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이다.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우리 역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다는 것을 모른다면 어찌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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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9-34

 마태복음 6:19-34 (공동번역)

예수께서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땅에 쌓아둔 재물은 좀먹고 녹슬어 못쓰게 되거나 도둑질 당한다. 그러나 하늘에 쌓아두면 이런 일이 없다. 우리는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기 마련이다. 하늘 위에 것을 생각하는 것이, 하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눈이 성해야 온 몸이 밝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둡다. 눈은 마음의 빛을 드러낸다. 마음이 어둡다면 몸도 어두울 것이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목숨이 음식식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하느님은 공중의 새들을 먹이신다. 우리가 목숨을 걱정한다고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연장할 수 없다. 하느님은 우리를 입히신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들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지 않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필요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라고 하신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가르치신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지, 종교적 열심을 먼저 내야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 첫머리에서 말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진정한 예배를 뜻한다. 세상 조류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하여 새사람이 되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지 분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에서(12:31-34)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비록 적은 무리에게, 혹은 믿음이 어린 무리에게라도)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기꺼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우리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것은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내것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의 걱정은 나의 내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오늘이어야한다. 나의 내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공동체의 오늘을 위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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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9-18

마태복음 6:9-18 (공동번역)

예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예수께서는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그 기색을 드러내면이미 받을 상을 다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단식할 때 오히려 얼굴을 씻고 기름을 발라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아버지께 보이라고 가르치신다.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공동체적이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선서하는 기도다. 우리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공동체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다. 따라서 당연히 공동체에 속한 형제자매들의 상황을 돌아보고 책임지겠다는 기도다. 공동체 내에서 서로의 빚을 탕감해 주겠다는 서약의 기도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 시민권은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때 유지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깨뜨리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이야 말로 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서로를 용서하는 사람들이다. 용서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잘 드러내는 성품은 없다. 주기도문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라는 가르침의 연장이다. //남에게 보이려고 금식한다는 것은 공동체를 깨는 행위다. 믿음에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를 깨는 것이며, 이미 자기 상을 이미 받은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