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20 (공동번역)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은 짠맛이 있다. 짜지 않은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빛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등경 위에 얹어두어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밝게 비추게 한다. 우리도 우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오시지 않았다.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어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계명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고 경고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이다. 그렇다면 짠 맛을 내야 한다. 짠 맛이 없으면 소금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금에서 내버려져 밟힐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잃은 사람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그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은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겸손(온유)하고 굶주리고 목마르면서도 자비하고 정결한 마음을 갖고 화평하고 박해를 받더라도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빛이다. 그렇다면 비추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빛의 근원은 아니다. 빛의 원천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성자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것이 착한 행실이다.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행실이다. //착한 행실로 사람들을 비추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살아내야 한다. 율법주의가 아니라 사랑주의다. (성서 원본 없이 다양한 역본으로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일점 일획은 허사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의 인도에 따라 말씀을 읽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랑으로 적용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해야 하고, 공동체적으로도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옳게 살고,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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