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2-19 (공동번역)
투옥 당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행하는 일을 전해 들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 분이 바로 선생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게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시며 보고 들은 대로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셨다. 광야에 있던 요한이야 말로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다. 성서에서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놓으리라’ 하신 말씀이 요한을 가리킨다고 하시며, 요한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요한 보다는 크다고 하셨다. 12절??.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예언서가 말하는 다시 오시기로 된 엘리야가 바로 요한이라고 하시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는 예언의 말씀에 바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신다. 세상은 요한의 금식에 대해서는 미쳤다고 하고, 인자는 세리와 죄인하고만 먹고 마신다고 말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요한의 의구심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이미 나타난 결과로 (말씀의 성취로) 답을 대신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한이 예언서에서 말한 다시 온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의 성취(결과)는 분명한데 요한은 잠시 흔들렸고, 사람들은 결과를 바로 읽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말씀)이라는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잣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요한의 금식도 예수님의 먹고 마시는 것도 모두 미친짓이 된다. //말씀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 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도,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말씀이 성취된 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신다. //우리는 말씀이라는 잣대마저도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한다. 성서도 성령에 붙들려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