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69-27:10 (공동번역)
한편 바깥 뜰에 앉아 있는 베드로에게 여종 하나가 다가와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여러사람에게 무슨 소린지 모른다며 부인하며 대문께로 나갔다. 그곳에서 다른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은 나자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다시 부인했다. 조그 뒤에 거기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오면서 틀림없이 당신도 그들과 한패라고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는 거짓말이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며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잡아떼었다. 바로 그 때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전에 세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는 예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
이른 새벽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를 죽일 계획을 짜고 예수를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다. 배반자 유다는 예수께서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자기 죄를 뉘우쳤다. 그래서 은전 서른닢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며, 자신은 죄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자신들의 알 바 아니라고 말했다. 유다는 은전을 성소 내동댕이 치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대사제들은 그 은전을 주워 이것은 피 값이니 헌금궤에 넣을 수 없다며, 그 돈으로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태는 이 역시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하신 말씀의 성취라고 기록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목숨을 걸고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이리 쉽게 무너지다니. 베드로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님의 말씀이 능력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능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랴? 결국 베드로는 몹시 울어야 했다. 자기 의지로 말씀을 이길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그래서 말씀 앞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말씀 앞에 겸손해야 (말씀을 이길 수없음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다. //한편 배반자 유다의 뉘우침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프다. 유다는 심지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말씀의 능력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섰다. 하나님의 자비보다 자기 판단을 따랐다.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자살로 마감하고 말았다. //스스로를 의지하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나라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말씀이 능력있다. 말씀에 굴복하는 것이 세상에서는 결박을 당하는 길일지 몰라도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