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12-21

열왕기상 8:12-21

언약궤를 성전에 들인 후 솔로몬이 야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성소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솔로몬은 야훼께서 몸소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하셨으니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세운 이 전에 영원히 여기에서 사십시오 하고 말했다. 솔로몬은 고개를 돌려 모여 있는 온 회중을 향해 복을 빌어주었다. 솔로몬은 먼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모두 그대로 이루어주셨으니 그를 찬양하라고 입을 뗀 후,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다윗 왕조를 세우신 분도, 다윗에게 성전을 지을 마음을 품게 하신 분도, 다윗 대신 다윗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성전을 지은 것도 주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라고 말했다. 그래서 야훼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맺어주신 계약을 넣은 궤를 성소에 마련했다고 말한다.

//십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다. 계약서다. 다윗도 솔로몬도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보관하는 이유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늘나라 집/땅문서를 장롱 깊숙히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서를 보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의 내용을 숙지하고 지키는 일이다. 가끔이라도 꺼내 보고 계약자의 이름이 조상의 이름이 맞는지, 자신이 상속자가 맞는지 따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계약조건에 맞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열왕기상 7:40-51

열왕기상 7:40-51

51절 이렇게 해서 솔로몬 왕은 성전 건축을 완성했다. 그런데 40절에서 사관은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해 성전 짓는 일을 마쳤다고 기록한다. 45절에서는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해서 (도와서) 온갖 성전의 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48절에 가면 사관은 솔로몬이 성전에 있는 온갖 기구를 만들었다고 마무리 한다. 삐딱하게 보면 솔로몬 왕을 우상화하는 시도다. 성전을 세우는 것은 결코 사람을 위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 예를 들어 성경공부, 제자반, 찬양 등등 교회를 세우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지도자를 위한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간곳 없고 사람의 이름만 남는다면 이 역시 우상화가 아니면 무엇이랴?

//저녁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선교가 무엇인지 갈수록 모르겠다.

열왕기상 7:27-39

열왕기상 7:27-39

사관은 청동기술의 명장 히람(후람)이 놋받침대와 놋대야 열세트를 만든 사건을 기록한다. 놋대야와 놋받침대의 쓸모는 번제물을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을 담아 놓기 위해서다. 사용하기 편하라고 바퀴까지 달아 놓았다.  그런데 반복해 읽어도 머리에 확 와닿지 않는 히람의 작업을 상세히 기록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기록 당시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후대를 위한 시방서도 아닌 것 같다. 놋받침대와 놋대야의 기능이나 의미보다 문양의 화려함과 구조의 상세한 기록은 후람의 재주만 부각 시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후람의 재주에 성막을 지을 때처럼 ‘하나님이 기술자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일을 했다’ 와 같은 출애굽기 식의 설명이 따라붙지도 않는다. 성막과 다르게 솔로몬 성전은 왠지 사람의 힘으로 지어진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정교한 작업이라도 구리 조각으로 해체되어 바빌론으로 옮겨질 운명이 아니던가?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이 세운 것은 헛되다. 

발릭빠빤 선교탐방 1일차 시작이다. 뱅기가 연발해서 환승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짐이 다 도착하지 못했으나 몸은 안전하게왔다. 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하신다. 오늘 임할 은혜를 사모한다. 

열왕기상 7:13-26

열왕기상 7:13-26

솔로몬은 띠로(두로)에서 히람(후람)을 초대했다. 그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한 과부의 아들로 아버지는 띠로 사람으로서 청동기술공이었다. 그는 청동기술공 명장으로 솔로몬 왕의 청탁을 받아 일을 했다.
청동으로 기둥 두개를 만들어 성전 본전 현관에 세웠다. 오른쪽에 세운 것은 야긴, 왼쪽에 세운 것은 보아스라고 명명했다. (야긴과 보아스의 뜻을 풀이하면 ‘그가 능력 가운데 세우신다’ 이다.)
그는 구리로 큰 바다도 만들었다. 오늘날의 용량으로 따진다면 4만에서 7만 리터 정도 된다고 한다.

//공동번역은 두로에서 데려온 청동기술공 명장 후람을 히람으로 번역한다. 두로 왕의 이름과 같다. 사관은 굳이 후람에게 납달리 지파의 피가 흐른다고 적시한다. //두 기둥은 성전이 어떤 곳인지 잘 드러낸다. ‘야긴/보아스’는 의역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권능이 머무는 곳’ 이 된다. //후람이 만든 놋바다에 대해 왕하 25장 13절에 ‘바빌론 군대들은 야훼의 전 안에 있는 놋기둥들, 놋받침대, 놋바다 등을 해체하여 그 놋쇠를 바빌론으로 가져가고’ 하고 기록한다. 웅장하고 화려한 것도 영원하지 않다. 놋기둥에 새겨진 ‘야긴/보아스’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놋기둥과 놋바다는 그저 구리 덩어리에 불과하다. //성서를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조 때부터 수천 년의 역사 가운데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그저 한 권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해서 성서를 읽어야 한다.

열왕기상 7:1-12

열왕기상 7:1-12

//솔로몬이 자기 궁을 짓는데 십삼 년이 걸렸다. 궁궐에는 수풀궁, 기둥홀, 재판홀, 그리고 자기가 살 궁, 솔로몬이 아내로 맞이한 파라오의 딸을 위한 궁이 포함 된다. 성전 건축은 칠년 걸렸으니 궁궐 공사에 십삼 년이 걸린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성전 건축에 칠년이나 걸렸다는 것이 이상하다. 하여간 기간과 열심이 꼭 정비례 하지는 않다. //사관은 왜 성전마무리 기록에 앞서 궁궐 공사를 끼어 넣었을까? 아마도 성전 주변(뜰) 조경?공사 마무리가 궁궐공사와 함께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사관은 성전과 궁궐이 같은 자재(큰돌과 백향목)로 건축되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건축재료가 같다고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건물은 그 안에 누가 임재(거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성도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 가운데 삼위 하나님이 거하셔야 한다. 썩어질 몸둥이를 아무리 치장해도 성전이 되지는 않는다.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지어도 성전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옷입은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삼위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거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