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6:14-38

https://quietwaters.blog/2023/09/15/

열왕기상 6:14-38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14] 성전 내부장식에 들어갔다. 내부장식은 성전 내부의 파티션, 즉 지성소와 성소 (내소와 외소)를 구분하고 사람이 보는 모든 면에 금을 입히는 작업이 핵심이다. 마루와 벽면 뿐아니라 제단과 그룹들도 금으로 입혔다. 이렇게 솔로몬 즉위 넷째 해에 시작한 성전건축은 솔로몬 열한째 해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다.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했다.
성전 내부를 금으로 입힌 것은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과시용이었으면 차라리 성전 외벽을 금으로 입혔을 것이다. 오히려 정금이 상징하듯 성전의 순결성의 상징하기 위한 일종의 정결의식으로 금을 입혔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 티끌만한 흠도 없는 완벽한 곳을 상징한다. 성전 건축 7년 기간중 내부 장식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라고 선언한다. 성전을 정금으로 입히는데 몇년의 시간이 필요했듯이 우리 역시 그리스도로 옷 입는데 시간이 걸린다. 짠하고 옷을 갈아 입을 순 없다. 성경도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도 해야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배워하고 훈련해야 한다. 경건의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정금으로 입히는 것이다. 외형이 (할례나 세례가) 다가 아니라 마음이다.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까지 단장해야 한다. 무너질 솔로몬 성전을 단장하기 위해서도 칠년이 걸렸는데,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생 단장을 해야 한다.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사 61:10] 구원을 이룰 때까지 단장해야 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 13:14 새번역]

열왕기상 6:1-13

열왕기상 6:1-13

//야훼께서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물리적 성전은 차치하고 솔로몬이 주님의 규범대로 살고 주님의 규정을 따르고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살아가면 주님은 다윗에게 약속한 바를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면 주님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 지내시겠다고 하신다. 임마누엘! //솔로몬이 지어야 할 진정한 성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임마누엘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지어가야 할 성전도 임마누엘임이 틀림없다. 임마누엘은 개인적으로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반드시 교회적으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주 나의 신랑 나 주의 신부’가 아니라 ‘주 우리(교회) 신랑 우리(교회) 주의 신부’ 라고 노래해야 한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단장하는 교회의 지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성전을 짓겠다는 우리의 열심은 알겠지만 정말 건축해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말씀에대한 순종이라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갈 때 성도는 임마누엘을 누린다. 

열왕기상 5

열왕기상 5

//사관은 두로 왕 히람이 이스라엘 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했다고 기록한다. 그래도 그가 이스라엘의 주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셨을리 없다. 그렇다고 외교관례 상 입발린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다윗과의 관계에서 그는 하나님을 알아갔을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신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적어도 해상 무역과 나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두로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보다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신들의 신이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분이시다. 유대교가 창조주 (우주적)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묶어두려고 했다면, 예수께서는 이런 배타적 담을 허무시고자 했다. 예수를 따르는 (믿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기독교의 신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신들의 신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신으로만 보게 될 것이다. 

열왕기상 4:20-34

열왕기상 4:20-34

유다와 이스라엘의 주변 국들은 솔로몬에게 조공을 바쳤다. 솔로몬 통치하에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솔로몬 왕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을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부강했다. 문화적으로도 우수했다. 그리하여 모든 민족으로부터 사람들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고, 솔로몬의 지혜의 소식을 들은 세상의 모든 왕들도 솔로몬을 찾아왔다.

//사관은 솔로몬 왕국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는다. 솔로몬이 주인공이다. 모든 것이 솔로몬이 다스리는 동안으로 언급된다. 사관도 국뽕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잊어버리면 그 결국은 시작과 같지 않을 것이다. ㅠㅠ

열왕기상 4:1-19

열왕기상 4:1-19

솔로몬 왕이 다스릴 때의 고급관리들이 소개 된다. 사독의 아들 아자리야는 사제, 시사의 두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행정관,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공보대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 사독과 에비아달은 사제, 나단의 아들 아자리야는 장교를 지휘하는 사람, 나단의 아들 사붓은 왕의 친구이자 사제, 아히살은 궁내대신,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부역책임자였다. 솔로몬은 열두 지파에 지방 장관을 두어 한달 씩 돌아가며 왕과 왕실의 양식을 바치도록 했다. 그런데 열두 지방장관을 보면 각 지파에서 뽑은 것이 아닌 것 같다. 솔로몬의 부마 2명의 이름도 보인다. 왕권이 강화 될 수록 자기 사람들을 지방장관으로 삼은 것 같다. 

//솔로몬은 왕이 되는데 일조한 사독과 나단의 아들들을 고급관리들로 중용한다. 솔로몬의 사위들도 한 자리씩 차지한다. 나단의 아들 사붓을 왕의 친구라고도 소개한다. 솔로몬이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폭넓게 사람들을 뽑아쓰지 못하고, 자기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한 것 같아 아쉽다. 솔로몬이 고대 근동의 많은 지혜서를 구해 읽었어도,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예언자 역할을 한 사람이 소개 되지 않는다. 결국 솔로몬에게 바른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통로가 제한 된 것이 솔로몬을 헛된 인생으로 이끌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