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5:1-15

열왕기상 15:1-15

아비얌이 르호보암의 왕위를 계승했다. 아비얌은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의 아들로 삼년을 다스렸다. 아비얌도 르호보암과 같은 죄를 지었다. 야훼 하느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다만 야훼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세워주셨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야 사건을 제외하고는 일생동안 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만을 하였고 야훼의 명을 어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르호보암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여로보암과 전쟁하였다.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이어졌다. 아비얌이 죽어 다윗 성에 매장되자 그의 아들 아사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 때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년이다.
아사는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간 다스렸다. 그의 할머니는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였다. 아사는 조상 다윗을 본받아 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는 일을 했다. 전국적으로 남창들을 소명하고 선왕들이 만든 우상을 없애버렸다. 아사는 할머니가 아세라 여신에게 바치는 음탕한 우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대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그것을 토막내어 불살라 버렸다. 산당은 보존되었지만 아사는 일생동안 야훼께 한결같이 신실했다. 그는 자기 소유의 각종 금은 집기들을 야훼의 전에 바쳤다.

열왕기상 15:1-15

//르호보암과 아비얌은 끝까지 무력 통일을 시도했었다. 두 왕을 특정짓는 구절이 [르호보암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여로보암과 전쟁하였다.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 6,7절이다. 하나님이 동족과 싸우러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건만,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 //뒤를 이은 아사. 제위 기간이 사십일 년이다. 다윗, 솔로몬까지 통치기간이 사십년이었는데 일년을 더 다스렸다. 하나님 보시기 올바른 일을 한 왕이 누린 복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상징성이 있는 숫자다. //사관은 아사의 경우 아비얌의 왕위를 계승했다는 표현에 앞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어 (불순종한) 아비얌을 이을 아들을 주셔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성으로 보전시키셨다고 기록한다. 다윗 왕조의 연속성은 이렇듯 말씀/언약의 성취로 이해해야 한다. //아사가 할머니를 폐위시킨 사건은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여부에 달려 있음을 예시한다. 아사 때 산당이 보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한결같이 신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에 말씀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인간적 연약함으로 우리는 우선순위를 둘 수는 있겠지만 하나씩 순종해 나가야 한다. //아사는 자기가 물려받은 재물을 하나님께 돌렸다. 자신의 소유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알았다는 고백적 실천이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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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4:21-31

열왕기상 14:21-31

한편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렸다. 르호보암은 사십일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간 다스렸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라는 암몬 여자였다. 유다 백성도 야훼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선조들보다도 더 큰 죄를 범하여 야훼께 미움을 샀다. 산당을 짓고 돌로 남신을 나무로 여신을 만들어 세웠다. 전국에 남창이 우글거렸다. 야훼께서 쫓아내신 원주민들의 온갖 추악한 폐습을 본받았던 것이다.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 르호보암은 금방패 대신 놋방패를 만들을 왕국을 경비하는 친위대 장교들을 무장시켰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르호보암은 세상을 떠나 다윗 성 안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위를 계승했다.

열왕기상 14:21-31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이미 마흔한 살. 그렇다면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 르호보암의 어미 나아마는 솔로몬의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졌다. (스바의 여왕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청년? 솔로몬은 이 암몬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고, 나아마는 조강지처로 (통혼정책으로 데려온) 다른 여자들 위에 군림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암몬의 신(밀곰/몰렉)은 인신제사를 받는 신이 아니던가. 솔로몬에게 일천이나 되는 첩과 후궁이 있었음에도 아내 나아마와 아들 르호보암, 딸 둘의 이름 외에는 기록이 없다. 나아마가 다른 여인이 낳은 아이들을 인신제사로 바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여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숨겼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르호보암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한 것은 어미 나아마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솔로몬도, 르호보암도 나아마의 손아귀에서 놀아 났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 ㅠ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카피도 있지 않은가? 사관이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이고 암몬여자라고 반복하는 이유다. //솔로몬의 영광이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세기도 안 되어 이집트 시삭 왕은 금방패를 비롯한 성전과 궁궐의 금붙이를 싹쓸이 해갔다. 르호보암은 남은 놋으로 금방패를 대신해야 했다. 르호보암은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북 열지파를 잃어 힘이 약해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없이 국력을 회복하려니 남(르호보암)과 북(여로보암)은 통일왕국의 주도권을 가지고 서로 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진정한 태평성대는 순종함으로 누리는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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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4:1-20

열왕기상 14:1-20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눕게 되었다. 여로보암은 왕비에게 변장을 하고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실로에 있는 아히야 예언자를 만나 왕자가 나을지 낫지 몰할지 물어보라고 말했다. 아히야는 이미 늙어 앞을 잘 보지 못했다. 야훼께서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아들의 병에 대해 물으러 올 것과 대답을 알려 주셨다. 왕비가 도착하자 아히야는 왕비가 묻기도 전에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여로보암이 다윗의 길로 가지 않고 선왕들보다 더 큰 악을 저지르고 우상을 만들고 다른 신을 섬겨 야훼의 속을 썩였기 때문에 야훼께서 여로보암 왕가에 재난을 내려, 여로보람 가문에 속한 남자는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겠다는 야훼의 대답을 전했다. 여로보암에 속한 남자가 성안에서 죽으면 개 밥이 되고 성 밖에서 죽으면 날짐승의 밥이 될 것이라는 어김 없는 야훼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왕비가 돌아가면 바로 왕자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훼 보시기에 옳게 살은 왕자만은 무덤에 묻힐 것이고 말했다. 그리고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왕을 뽑아 여로보암 가문을 멸종 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서 뽑아흩어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궁궐로 돌아왔을 때 왕자가 숨을 거뒀다. 야훼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왕자를 장사지내고 애도했다. 여로보암은 이십 년간 통치한 후 죽고 왕자 나답이 왕위를 계승했다.

열왕기상 14:1-20

//여로보암은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히야 앞에 나가서 아들에 관해 묻기를 주저했다. 대신 아내를 보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하는 행동이다.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나아가야 한다. 여로보암의 태도는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이다.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들다니. 여로보암의 길은 이렇게 다윗의 길과 달랐다. 다윗의 길이란 주님의 명령을 지키고,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행동을 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는 늙어 앞을 잘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들은 말씀을 순종해 전할 수 있는 입을 가져야 한다. 실로의 아히야가 그랬다. //여로보암은 아들을 낳고 ‘아비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도 신실했었다. 아비야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아비야는 이름값을 하며 산 것 같다. 사관은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착하게 살았다고 기록한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길의 결국, 즉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지 않고 무덤에 장사되는 복을 누렸다. 때론 일찍 죽는 것도 복이다.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들의 죽음에도, 말씀의 성취를 목격하고도 여로보암은 요지부동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도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결과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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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23-34

열왕기상 13:23-34

//늙은 예언자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물을 마셔 기운을 차린 하나님의 사람은 나귀까지 얻어 타고 유다로 돌아오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는 극도로 피곤했을 지라도 생명이었다면, 먹고 마시고 기운을 차리고 나귀까지 얻어 탔어도 그 기쁨은 잠시요, 불순종의 결국은 죽음이었다. 안타깝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을 설명하면서 모세가 믿음으로 죄의 일시적인 쾌락을 즐기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는 길을 택했다고 풀어낸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일시적인 안락을 택한 예가 아닌가 한다. //늙은 예언자는 자기가 대접한 하나님의 사람이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탄식했다.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말로만 예언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사관은 늙은 예언자의 말이 성취 되자 잠시 ‘늙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거두어 나귀에 싣고 돌아와 자기 가족 묘지에 안장하고 자식들과 애곡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매장한 후 사관은 다시 ‘늙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늙은 예언자는 자기가 죽으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묻힌 무덤에 같이 묻어 달라고 유언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다시 예언했다. 이렇게 여로보암의 왕국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예언자가 생겼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런 일이 있음을 들었을 것임에도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산당의 사제(제사장)을 뽑아 임명하는 죄를 저지른다. 여로보암의 왕가는 이런 죄로 결국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과 멸망은 같은 것이다. 역으로 영생은 순종의 다른 말이다. //오늘도 영생의 외줄타기를 한다. 좌우로 치우쳐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게 인생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이미 떨어졌어도 모를 일이다.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열왕기상 13:11-22

열왕기상 13:11-22

//베델 제단에서 여로보암과 제단에 일어난 일은 목격자들이 있었다. 늙은 예언자의 아들은 여로보암이 임의로 세운 제사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버지에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얘기 했다. 늙었다는 것은 나이가 많은 예언자라는 뜻이겠지만, 예언을 한지 오래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아들의 증언은 이 늙은 예언자에게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니지 않을까? //늙은 예언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가 만난다. 하나님의 사람은 느티나무 아래서 쉬고 있었다. 유다(예루살렘)과 베델은 16킬로 정도 떨어졌다고 한다. 길이 굽이굽이 휘었다면 거리는 하프마라톤 정도 되었을 것이다. 걸어서 세네시간은 걸린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니 피곤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순종의 결과가 항상 기쁨인 것은 아니다. //늙은 예언자가 거짓말까지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불러 먹고 마시운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결국 늙은 예언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늙은 예언자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가던 길을 되돌아 왔을 뿐 아니라 먹고 마셨으니 죽어서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늙은 예언자의 예언의 욕심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죽음에 몰아 넣는다. //확실한 명령이 있는데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속아넘어갔다.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암송까지 하며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나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누락시며 적용하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한국교회가 순종보다 평안만을 떠들어 대는 그럴싸한 거짓 설교에 속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늙은 예언자들, 늙은 설교자들을 주의하자. 단순히 나이가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없이 기존의 교리에 갇혀 사람의 말을 하는 종교사기꾼들을 조심해야 한다. 결국 스스로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