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6:9-57:13

이사야 56:9-57:13

(주님은) 들짐승들, 산짐승들을 부르셔서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 먹으라고 명하신다. 백성을 지켜야 할 지도자들을 소경이요 벙어리일뿐 아니라 게으름뱅이라고 꼬집으신다. 그들은 욕심쟁이요 방탕하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하신다. 그들이 술에 취해(쩔어) 살도록 버려두신다.
지도자들이 올바른 사람이 망해도, 경건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사실 올바른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재앙을 벗어나 평화를 누리러 가는 것이다. 올곧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잠자리에 누워 편히 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점쟁이의 자식들, 간통의 씨, 매춘부의 종자들은 죄악의 씨요 사생아가 아니냐고 반문하신다. 제사를 드리는 산당에서도 색을 탐하며, 자식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책망하신다. 제사드리는 제단에서 어떻게 성적음행을 행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문설주 뒤에서도 남신상을 모셔놓고 그 곳에서도 성적음행을 저질렀다고 하신다. 종교지도자들이 화대를 받고 질탕하게 놀아났다고 심판하신다. 몰록 신을 섬기위해 멀리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그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무엇이 무서워서 주님을 배신하는지 물으신다. 왜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느냐고, 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한탄하신다. 스스로 잘했다고 으시대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주님은 그들의 소행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우상은 그들을 구해주지 못한다. 우상을 찾는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입김에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은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주님의 거룩한 산을 상속받는다.

이사야 56:9-57:13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마5:5. //잡아 먹혀야 할 지도자들은 종교적 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백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술에 쩔어 방탕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이어서다. 그래서 그들은 올바른 사람이 망하고 경건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님은) 올바른 사람들을 지키시기 위해 데려가신다. 이 땅의 재앙에서 벗어나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세상에서는 죽는 것 같으나 주님 품에서 안식하게 하신다. //정치적 지도자들만 아니라 종교적 지도자들도 잡아 먹혀야 할 대상들이다. 하나님과 음욕과 돈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주님 대신, 우상이 두려워 주님을 배신한다. 양다리를 걸치고는 스스로 잘했다고 으시댄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의 소행을 밝히실 때, 생명없는 허수아비 우상이 그들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주님만 섬겨야 한다. //그래서 주님을 믿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바라는 사람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 주님의 거룩한 산을 상속 받는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온유한 사람. 올곧게 사느라고 겸손하고 낮아져도 주님은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실 것이다.

이사야 56:1-8

이사야 56:1-8

1 주님이 말씀하신다.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살으라고 하신다. 주님이 구원자로 왔고 승리자로 나타실 때가 왔다고 하신다. 2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사람 복되다고 하신다.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것을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고 온갖 악에서 손을 떼는 것이라고 하신다. 3 주님께로 개종한 외국인, 고자라도 주의 백성에서 제명당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4-5 주님은 고자라도 안식일을 지키고 주님의 뜻에 맞는 일만하고 주님과의 계약을 굳게 지키면, 주님나라의 족보에 이름을 올려주신다고 하신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주신다고 하신다. 6-7 외국인들도 주님께로 개종하여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여 주님의 종이 되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주의 계약을 지키면 제물도 받아주시고 주의 집에 거하게 하신다. 8 쫓겨났던 이스라엘 사람들만 모아들이시는 것이 아니라 만방에서 모아들일 사람이 더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56:1-8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신칭의의 교리에 빠져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것 위에 믿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삶을 가리킨다. 믿는다는 고백은 믿음 자체가 아니다. 믿음은 고백으로만 이뤄지지 않고 행실이 요구 된다.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사람이 복되다는 것은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사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하늘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뜻이다. 하늘나라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법에 지배를 받겠다는 의미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약속이 믿음 시작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지속적인 삶이 믿음이다. //이 믿음을 따라 계명을 지키고 악에서 손을 떼면,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대로 나지 않은 이방인이나 고자라도 하나님나라에 시민으로 등록된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살 수 있다. 하나님나라에서 산다면 하나님나라의 법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나라에서 법을 어기면 주민이든 방문객이든 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나라의 법을 지키면 설령 하나님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하나님나라에 방문하여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이렇듯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은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사는 곳이다. 이것이 복이다. 복되도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여!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살자. 양심을 따라 살기만 해도 복되다. 하물며 말씀을 따라 산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을까!

이사야 55:1-13

이사야 55:1-13

1 화자(이사야)는 주께서 목마르고 굶주린 자들을 초대한다고 노래한다. 주님은 값없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한다. 다만 그들이 값없이 사서 먹고 마셔야 한다. 곧 초청에 응해야 한다. 2 그런데 사람들은 초대에 응하기 보다는 자기 일에 돈쓰기 바빠 잔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3 그래서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들으라고 권한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생기가 솟는다. 주님은 다윗과 맺었던 언약을 기어하시고 주의 백성과 영원한 새계약을 맺길 원하신다. 4 다윗이야 말로 주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 잘 드러내는 증인이다. 5 주님은 뭇 백성(민족)이 주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주께서 주의백성을 영화롭게 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6 주님을 찾아라. 주님이 너희를 만나주실 때가 되었다. 주님을 불러라. 주님이 옆에 와 계신다. 7 불의한 자는 그 길을 돌이키고, 허영에 들뜬 자는 그 생각을 고치고 주님께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러면 주님은 그들을 자비롭게 맞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 돌아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 것이다. 8-9 주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르다고 친히 말씀하신다. 하늘이 땅에서 높듯, 주님의 길과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 10-11 자연에서 배울 수 있듯이 주님의 말씀은 그냥 땅에 떨어지지 않고 말씀대로 성취 된다. 12-13 자연만물도 말씀이 성취를 기뻐한다. 자연을 다스리는 주님의 이름이 들날리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사야 55:1-13
//예수님의 천국잔치 비유가 떠오른다. 잔치에 초대를 했으나 초대 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신다. 목마르고 굶주리면 잔치에 그냥 참석할까? 주님이 굳이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와서 값없이 사서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초대를 받았으면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목마르고 굶주리면서도 다른 데 바쁜 사람들은 무료 음료와 음식을 마시고 먹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배부르는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다. 영적인 갈급함을 의미하는 것만도 아니다. 의는 관계적이요 공동체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공동체내의 사회적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알기 때문에 생기는 욕구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공동체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된다. 모두 배부르게 된다. //이전에는 왕이나 권세잡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아주면 됐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아야 하는 국민주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왕이 다스리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옛적에는 주님이 다윗 왕 한 명과 언약을 맺으시면 됐지만, 이제는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다. 교회지도자만이 아니라 성도 모두가 우리 주님이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 모두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찾으라. 주님을 만나라. 주님을 부르라. 영이신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부르는 다고, 이것을 결코 영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적이다. 악한 길에서 떠나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님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 불의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을 찾고 만나고 부르는 것은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찌 하늘의 길과 생각을 알리요. 다만 성령께서 깨닫해 주시는 만큼 순종할 뿐이다.

이사야 52:13-53:12

이사야 52:13-53:12

화자는 “할 일을 다 마친 주의 종은 높이높이 솟아 오른다. 무리는 높이 솟아 오르는 주의 종을 보고 몰골이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며 기막혀 했다. 그리고 만방은 이런 미증유의 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식을 곧이 듣는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야훼께서 이루신 일을 깨닫는 사람도 없다고 하신다. 주의 종에 대하여 설명을 이어간다.
[그는 멋진 모습도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알았다. 사람들이 그를 피해 가면서 멸시했다.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은 그는 우리가 앓는 병을 앓아 주었다.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는 줄 알았다. 하느님께 매를 맞는 줄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를 찌를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가 (우리 대신)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가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다. 우리가 모두 양처럼 길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 놀아났지만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잠잠하셨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잠잠하셨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했다. 폭행을 저지른 일도 없었고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함께 처형 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야훼께서는 뜻이 있으셔서 그를 때리고 찌르셨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그의 손에서 야훼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볼 것이다.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대신 짊어짐으로써 그 사람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 알고 마음 흐뭇해 할 것이다. 나는 (야훼는) 그로 하여금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첨럼 차지할 것이다. 그가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었기 때문이다. 반역자의 하나가 되어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52:13-53:1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행하는) 자가 ‘주의 종’이요, ‘주의 종’에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주의 종이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이유는 외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주의 종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또 죄인들을 살리려고 중재자가 되셨기 때문이다. 주의 종이 높임과 존경을 받는 승리자가 된것을 주님은 ‘의롭다’ 라고 하시고, 의로운 주의 종이 할 일도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주의 종’의 최고봉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의로운 성도는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순종)으로, 다른 사람도 의롭게 해야 한다. 이것이 주의 종의 역할이요,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유사이래 계속 그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은 더 심한 것 같다. 주의 종은 외모지상주의에 역행한다. 일부러 외모를 훼손할 필요는 없지만 외모에 투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보인다. 주의 종은 보기 처참할 정도라고 한다. 채찍에 맞아 상처를 입는다. 그것도 다른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에 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높이높이 솟아 오른다. 미증유의 사건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죄인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삶! 주의 종 예수의 길 갈수록 어렵다. 그래도 주의 뜻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