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12-31

이사야 40:12-31

야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풀어간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을 온전히 소개할 수 없다. 야훼의 뜻을 좌우할 사람이 없으며, 야훼를 가르칠 사람도 없으며, 야훼께서는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야훼 앞에서는 열방이라도 물방울이나 먼지일 뿐이다. 레바논의 산림은 하늘나라의 장작으로 쓰기에도 부족하고 거기 뛰노는 짐승들도 번제물로 바치기에 모자란다. 민족들을 다 모아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니며 허무하여 그 자취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과연 하느님을 누구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장장이가 금은으로 부어 만든 우상이 아니시다. 손재주 있는 사람이 나무로 만들어 세운 우상도 아니시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에 비하면 사람들은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통치자들과 위정자들도 하느님 앞에서는 허수아비와 같다. 하느님의 입김이면 그들은 말라버리고 바람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그러면 거룩하신 하느님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천체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다. 만드신 것을 하나 하나 다 아시는 분이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야훼 주님께 불평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주님이 나의 사정을 정말로 모르실까? 그러나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창조주이시다. 전지전능하신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줄 모르시며 슬기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이 하느님이 힘이 빠진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진한 사람에게 기력을 주신다. 그래서 청년들이 힘이 빠져 허덕이고 장정들이 비틀거려도,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날 것이다. 날개쳐 솟아오르는 독수리 같을 것이다. 뛰어도 고단하지 않고 걸어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40:12-31
//(출소하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다. 새로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다.) 그렇다면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사야(이사야의 저자)는 하나님에 대해 쓸 말이 무궁무진하다고 노래한다.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 //이사야는 (가장 먼저) 하나님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고 소개한다. 비교불가라고 선언한다. 굳이 비교한다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라고 말한다. 사람이 만들어 세운 생명없는 우상이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낱낱이 아시는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을 때, 인생은 독수리가 날개쳐 솟아오르듯 하고 고단하지 않고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그렇다고 ‘고단하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를 너무 강조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살아도 이 땅에서는 ‘힘이 빠져 허덕이고 비틀거려도’가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위로와 쉼을 얻게 된다.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지리적 귀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온(하나님의 다스림)으로의 귀환이다. 그래서 바벨론에 눌러 앉은 사람들, 다니엘도 에스더도 귀하다. 오늘날에도 각자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성도가 귀하고 귀하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지리적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곳이 시온이요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