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1-16
정의를 추구하고 야훼를 찾는 자들에게 말을 한다. 화자는 주님이시다. 청자를 바위와 같고 컴컴한 동굴과 같은 존재였다고 상기시킨다.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가해 보라고 말한다. 혼자였던 그에게 복을 주시고 자손을 번성하게 하신 분이 야훼 주님이시다. 야훼께서 시온을 불쌍하게 보시고 가엾게 여기신다. 그래서 광야를 에덴동산처럼 만드시고 흥겨움과 즐거움이 넘치고 감사의 노래가 울려퍼지게 하실 것이다.
뭇 백성들에게 주님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하신다. 부족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훈계를 들으라고 하신다. 주님의 법이(의가) 뭇 백성의 빛이 된다고 하신다. 주님의 정의는 홀연히 닥쳐오고 주님이 베풀 구원이 빛처럼 이미 나타났다. 주님이 뭇 백성을 재판하시면 뭇 백성이 주님을 우러러 보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다(주님께 소망을 둘 것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주님의 구원은 영원하며 주님이 세우시는 정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정의를 아는 자들, 주님의 훈계를 마음 속에 간직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욕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비방을 받더라도 낙담하지 말라고 하신다.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은 쫌에 쓸려 떨어지는 옷에 불과하다. 한편 주님이 세우실 정의는 영원하고 주님이 베푸실 구원은 대대에 미친다.
화자는 야훼를 부른다. 야훼를 깨운다. 구원의 주님의 팔을 일으켜 달라고 간구한다. 야훼께서 구해 내신 백성이 환성을 올리며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다.
(화자가 다시 주님이다.) 주님이 주의 백성을 위로하신다고 선언하신다. 죽을 (유한한)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 야훼를 잊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야훼를 잊게 한 압제자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신다. 포로들이 풀려나고 먹거리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야훼께서 주의 백성의 하느님이라고 선언하신다. 주 하느님의 이름을 만군의 야훼라고 가르쳐 주신다. 이 주님이 주의 백성의 입에 주의 말을 담아주시고 주의 백성을 주님의 손으로 숨겨주시는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이 주님이 시온을 향해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51:1-16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나란히 둔다. 신을 찾는 것,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가 정의추구라고 적용하면 이상한가? 우리는 개인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정의를 추구하기에 신을 찾아야 한다. 나의 욕심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신 앞에 서야 한다. //심지어 정의를 세우는 것을 구원과 연관짓는다. 신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만이 아니라 공동체로 흥겨움과 즐거움과 감사가 넘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의 모래처럼 많아지는 것이 복인 것처럼 하나님나라는 하나가 둘이 되고 거듭해서 배가 되는 나라다. //공동체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주님의 법(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소망이 있다. 백성 중에 이 소망으로 사는 것이 구원받고 정의를 세우는 길이다. 시온, 곧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요 정의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나라는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시온에 거주하는 주의 백성이 주님의 위로를 받는다. 유한한 세상 압제자들을 두려워하거나 낙담할 이유가 없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