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12-20

야고보서 5:12-20

12 맹세하지 말아라. 자기 주장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말씀에 따라 마땅히 할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심판을 받지 않는다. 13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라고 권한다. 14 아픈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를 청해야 한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15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가 지은 죄도 용서하실 것이다. 16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 온전해 진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낸다. 17-18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간절히 기도하자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그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은 비를 내렸고 땅에서는곡식이 열매를 맺었다. 19-20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그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줄 것이다.

야고보서5:12-20
//야고보가 열거한 믿음의 행위들. 맹세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라는 의미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은 하고, 하지 말라고 명하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종이 되라고 명한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고난 당하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한다. 1장에서 이미 적용했듯이 기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고, 성도가 구해야 할 하나님의 지혜는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여야 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가 믿음이다. //기쁠 때는 자화자찬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찬양을 드리는 것이 믿음이다. //아플 때에는 믿음의 원로들을 초대하는 것이 믿음이다. 육신의 아픔도 치료해야 하지만 마음의 아픔과 영적인 아픔인 죄도 치료받아야 하는데 공동체적인 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성도에게는 결코 건강이 최고가 아니다. 임마누엘이 최고다.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임마누엘보다 더 큰 처방은 없다. //엘리야의 기도를 예로 든다. 엘리야가 가절히 기도해서 비가 안 오고 간절히 기도해서 비가 다시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뜻이어서 비가 안 오고 다시 내렸다. 엘리야와 우리의 정신적 믿음의 차이가 아니라 엘리야와 우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차이를 읽어야 한다. 순종이 믿음이다. //믿음 중의 믿음은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 돌이켜 바른 길 가게 하는 것이다.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가게 할 수는 없다. 먼저 바른 길을 가는 것이 믿음이다. 성도가 바른 길을 갈 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믿음의 길을 가고 있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위를 믿음의 상대어로 읽어서는 안 된다. 신행(언행)일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야고보서 5:7-11

야고보서 5:7-11

재물을 쌓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7-8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농부가 추수 때까지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하듯이.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 9 서로 남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판주가 가까이 오셨다. 10 성경에는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가 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언자들이 좋은 예다. 11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들이 행복하다. 욥이 좋은 예다. 이렇듯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는 참으로 풍성하다.

야고보서5:7-11
//사람들이 재물을 쌓아두는 이유는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당장 오늘의 끼니 걱정에 내일을 염려할 여유도 없다. 부자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여 재물을 쌓는다. 그러나 재물은 썩어질 것이다. 내일을 책임져주지 않은다. //내일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물을 줘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농부가 할 것은 추수 때까지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수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고 반복해서 언급한다.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는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쌓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남을 탓하지 말라고 하신다. 심판은 어차피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오히려 세워주어야 한다. //고난을 끈기 있게 견디어 낸 사람들로 예언자들과 욥을 언급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복을 누렸다.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위로)와 풍성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그들이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의 열매다. 이제 우리가 연민과 자비를 베풀어 자비를 입는 복을 영원토록 누려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야고보서 5:1-6

야고보서 5:1-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야고보는 1 부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부자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가하고 울며 통곡하라고 권한다. 2 부자들의 재물은 썪었고 부자들의 옷은 좀먹어 버렸다. 3 부자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고 녹슨 금붙이는 부자들의 삶을 삼켜버릴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말세에도 재물을 쌓았다. 4 부자들은 일꾼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고 가로채서 재물을 쌓았다. 일꾼들이 만군의 주님께 고발하는 아우성이 주님께 들렸다. 5 부자들은 사치와 쾌락을 누리느라 일꾼들의 품삯을 가로채고 마음에 욕심을 가득채웠다. 6 재물을 쌓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그들이 대항하지도 않았는데 죽였다.

야고보서 5:1-6
//부자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야고보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사치와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니 죄다. //심지어 재물을 쌓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 거짓 증언을 하는 것,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죄를 짓기도 한다. 심지어 부자들은 치부(致富)를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치부(恥部) 를 가리려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투쟁만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한 우리 자신부터 정의롭게 살아내야 한다.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실 것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 중에 굳이 부자에게 한 마디 하는 야고보. 그만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예수께 나아왔다가 슬퍼하며 돌아간 부자청년이 좋은 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마라나타! 마지막까지 재물을 쌓다가 죽으면, 재물과 같이 썩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면 주님과 같이 높아질 것이다.

야고보서 4:11-17

야고보서 4:11-17

11 서로 헐뜯지 말라고 권한다. 형제를 헐뜯거나 심판/판단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이다.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된다. 12그러나 율법을 만드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분이시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멸망시키실 수도 있으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13-16 아무 도시로 가서 일 년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일 자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런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장담하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일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4:11-17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는 특별히 성도간의 다툼을 경고한다. 싸움뿐만 아니라 서로를 헐뜯고 판단하는 일도 경계한다. 심판자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행위는 나의 계획에 대한 추진력이 아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인생이라야 짧다. 그것도 안개와 같이 헛되다. 그러므로 자신의 계획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길을 맡겨야 한다. 모사재인이나 성사재천이다. 스스로의 계획에 집착하는 것은 허영이요 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구해야 할 지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아는 것이요, 착한 일을 행할 힘과 능력이어야 한다. 이런 지혜/믿음을 구해야 한다. //나의 확신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것이 죄다. (죄란 단순히 나쁜 짓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음없이 하는 모든 일은 죄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야고보서 4:1-10

야고보서 4:1-10

1-3 싸움과 분쟁의 원인은 욕정에서 나온다. 욕심을 내다 얻지 못하면 살인하고, 시기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킨다.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하느님께 (지혜)를 구했는데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4-5 절조 없는 사람들! 이 세상과 짝하면 하느님과 등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원수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6 성서에는 또 하느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주신다는 말씀도 있다.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대항해야 한다. 악마를 대항하면 악마가 우리를 떠나 달아날 것이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야한다. 그 만큼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 죄인이라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순결한 마음 가져야 한다. 9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울어야 한다. 웃음을 슬픔으로 기쁨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10 주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신다.

야고보소 4:1-10
//야고보는 믿음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받은) 지혜를 동일시하며, 한편으로 싸움과 분쟁은 믿음/지혜와 대비 되는 것으로 언급한다. 싸움과 분쟁의 원인을 욕심이라고 하니 결국 욕심이 믿음/지혜의 상대어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욕정으로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믿음/지혜 없이 구하는 것이 욕정/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뜻대로 구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지혜/뜻대로 구하면, 곧 믿음으로 구하면 당연히 응답받는다.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욕정을 따라 기도한다면, 그것은 나의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만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이 앞서는 것은 세상 가치관이 지향하는 바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세상과 짝을 짓게 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세상 욕정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세상 욕정과 멀리할 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그 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악마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절조 있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 맘대로 쉽게 안 되니,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괴롭고 슬프고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리가 죄를 씻고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겸손이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다. 예수 안에 거해야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만 나아갈 수 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이 높여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