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1-14

이사야 58:1-14

청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여간 목청껏 소리질러 주의 백성의 죄상을 밝히고 잘못을 드러내라고 하신다. 그들은 주의 백성인 척, 주를 찾는 척, 주를 알고 싶은 척, 옳은 일을 해 온 척, 신의 법을 어기지 않은 척, 옳은 법을 묻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척 하면서도 실상은 하느님께서 봐주시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단식(금식)을 하며, 알아주시지 않는 고행을 왜 하느냐고 반문하는 그들이 오히려 금식일에 돈벌이에 눈이 멀어 일꾼들을 부려먹는다고 질책하신다. 단식한다면서 시비나 걸고 싸움이나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을 주먹으로 때리는 그런 금식은 집어치우라고 하신다. 그런 금식중에 하는 기도가 하늘에 들리 리 없다고 하신다. 이 따위 금식을 주님은 반기지 않으신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단식(금식)은 어떤 것일까? 주께서 이런 단식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억울하게 묶인 이의 멍에를 풀어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는 것.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이하는 것,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 것, 친척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 이렇게 하면 우리 빛이 새벽 동이트듯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상처가 금방 아물것이라고 하신다. 야훼의 영광이 우리 뒤를 받쳐준다고 하신다. 이런 금식을 하면서 주를 불러야 주님이 대답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 가운데 멍에를 치우고, 삿대질을 멈추고, 못된 말을 거두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주면 우리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대낮 같이 밝아진다고 하신다. 주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시고 배불리 먹이시고 힘을 주셔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신다. 주님의 거룩한 날에 돈벌이 하느라고 안식일을 짓밟지 말라고 하신다. 안식일은 기쁜날 야훼께 바친날, 귀한날이라고 부르라고 하신다. 그 날을 존중하여 여행도 하지 말고 돈벌이도 말고 삼담 같은 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래야 야훼 앞에서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약속의 땅을 상속받는다.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 불쌍한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곳이 하나님나라라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자신의 쾌락을 누리는 나라가 아니라 주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말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공의를 묻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공의를 실천하고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삶이다. 자기 욕심에 따라 서로 싸우는 (남보다 나를 위한 경쟁적) 금식과 기도를 주님은 듣지 않으신다.

이사야 57:14-21

이사야 57:14-21

(주님이) 또 말씀하신다. [백성이 갈 길에서 걸림돌을 치우고 길을 훤히 닦고 또 닦아라.] 지극히 높으신 이, 보좌에 영원히 앉아 계시는 이, 거룩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얻어맞고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해주겠다. 더 이상 자잘못을 따지며 노여워하지 않겠다. 나에게서 용기를 얻고 생명의 숨결을 받게 하겠다. 나는 그들이 못되게 욕심을 부려 화가 났었다. 그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그들이 배신하고 제멋대로 가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이제) 내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며 위로하며 한껏 격려해 주겠다. 슬피 울던 입술에서 태평성대의 찬미가 터져나오게 하겠다.] 야훼의 약속이다. [내가 너를 고쳐주마] 그러나 악인들은 성난 바다 같아 가라앉을 줄 모른다. 쓰레기와 진흙을 밀어 올리는 물결 같다. 나의 하느님께서 반문하신다. [이런 악인들에게 무슨 평화가 있으랴?]

이사야 57:14-21
//지도자들은 백성이 갈 길에서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길을 닦아야 한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기적 탐욕으로 백성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주님처럼, 거룩한 보좌에 그냥 앉아 있지만 않고, 얻어 맞고 용기 잃은 사람들에게 내려와 그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아물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배반한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셨고 얼굴을 돌리기까지 하셨으나 주의 백성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못하셨다. 결국 그들의 병을 고치시며 위로하시며 격려하신다. 마침내 주의 백성은 슬픔대 희락을 누린다. 태평성대의 찬미를 하게 된다. 주님이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고침을 받아야 주님의 길을 닦을 수 있다. //주님이 주의 백성을 용서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잠시 잠깐 화를 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용서하고 위로해야 한다. 용서는 빠를 수록 좋다. 계속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결국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망한다. 주님께 돌이키는 자들에게 평화가 있다. 이 평화를 나누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