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7:1-18

여호수아 17:1-18

//18절 공동번역과 다른 번역의 차이. (공동번역) 그 곳은 숲이 있는 산악 지대이니 개간하여 가져라.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 산악 지대가 끝나는 곳까지 차지하여라. – 공동번역은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 라고 번역한다. 다른 번역들은 기본적으로 ‘비록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가 있고 강력하지만 쫓아낼 수 있다’ 하고 번역한다. 영어의 거의 대부분의 역본들도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번역하는데 공동번역은 왜 부정적으로 번역했을까? 므낫세 후손들이 마을들을 다 점령하지 못해서 가나안 사람들이 그대로 그 땅에 살았고, 이스라엘이 차츰 강해지면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고 노동을 시켰다는 12,13절을 반영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 사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 낼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시간이 걸린다. 강성해져야 한다. 더군다나 세상은 철병거만큼 강하다. 믿음이 아니면 세상의 철병거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믿음이란 무엇인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힘)이다. 유다지파의 갈렙처럼, 오늘 본문의 슬로브핫의 딸처럼, 요셉의 자손들처럼 약속에 근거하여 사는 삶이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산다면 세상이 오히려 결심하고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다. //세상이 강력해서 쫓아내지 못할 터니니 적당히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기자의 강조점은 ‘쫓아내지 못할 터이니’가 아니라 ‘산악지대가 끝나는 곳까지 차지하여라’에 있다. 성도의 순종은 끝이 없다. 산악지대라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 16:1-10

여호수아 16:1-10

요셉의 후손들에게 돌아간 땅에 대해 알려 준다.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몫을 받았는데 16장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경계를 알려준다. 저자는 유다 후손들이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마무리 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게젤(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은 채 에브라임에 섞여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있다고 기록한다.

여호수아 16
//게젤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은 채 이날까지 에브라임에 섞여 살면서 노동을 하고 있다. (여호수아 16장 10절) -여호수아서 저자는 유다 후손들이 차지한 땅의 경계와 성읍들을 열거한 후, 유다 후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은 몰아내지 못했다고 기록하는데, 에브라임 후손들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쫓아내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난공불락의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을 쫓아내기 못한 것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이지만,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을 아예 쫓아낼 생각을 하지 않고 노예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거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도 마땅히 해야할 수고를 덜기 위해 정의와 공평을 저버리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주일성수를 빌미로 우리에게 주어진 공공의 일들을 불신자에게 떠넘기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여호수아 15:20-63

여호수아 15:20-63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땅을 열거하고 갈렙 집안이 헤브론과 드빌을 차지한 기록 후에, 유다 후손들이 차지한 성읍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성읍뿐만 아니라 그 주변 마을(천막촌)까지 차지했다. 유다 후손들이 차지한 성읍들의 목록은 길다. 실제 가나안 남부의 대부분의 지역을 유다지파가 차지했다. 가나안 땅의 분배는 사람 수에 따라 제비뽑기로 분배되는 것이 원칙이었던 것 같은데…이렇게 많은 지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인구도 많았을뿐 아니라 전쟁에 앞장섰고, 갈렙처럼 남겨진 땅을 점령하여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스라엘 전체의 지도자적 지파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창49:10) 성취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후손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을 몰아내지 못했다고 마무리 된다. (여부스족은 다윗 때에 가서야 점령하게 된다.) 

//지리적 점령은 이렇게 미완으로 남는다. 이것을 대놓고 책망하시지는 않으신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이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느냐 아니냐가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과제다. 땅의 정복은 단지 순종의 가시적인 열매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 하나님나라(천국)이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민족과 나라가 많아지도록 선교/전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도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삶의 더 많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어쩌면 후자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몰아내지 못한 가시를 앉고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것보다, 좁은 땅에서라도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진정한 하나님나라다. 

여호수아15:1-19

여호수아15:1-19

유다 후손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 12절에 걸쳐 길게 소개된다. 그리고 13절에 와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유다 후손 틈에서 한 몫을 차지한 헤브론이 언급된다. 갈렙은 아낙의 후손인 세새와 아히만과 탈매를 헤브론에서 몰아냈다. 갈렙은 키럇세벨도 함락시켰다. 갈렙은 키럇세벨을 함락시키는 사람에게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선언했고 갈렙의 조카 오드니엘이 악사를 아내로 얻었다. 오드니엘은 악사를 시켜 갈렙으로부터 밭을 얻어오라고 했는데, 악사는 갈렙으로부터 윗샘과 아랫샘까지 결혼선물로 받아냈다.

여호수아 15:1-19
//유다 후손들이 차지한 땅이 언급되면서 갈렙이 또다시 언급된다. 갈렙이 유다지파의 지도자였으면서도 굳이 갈렙이 유다 후손 틈에서 한 몫을 차지했다고 기록함으로써 갈렙이 혈통적으로 유다 후손이 아님을 밝히는 것 같다. //갈렙의 아버지 그니스 사람 여분네가 어떻게 유다지파로 편입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갈렙가문이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된 가문이었음은 땅을 차지하는 기록에서도 남다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갈렙과 딸 악사와 갈렙의 조카 웃니엘의 열심도 남다르다. 예수께서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약에서 갈렙가문이야 말로 이 말씀에 적합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갈렙은 연장자의 기득권을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노구를 이끌고 (기력이 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거인 아낙 자손을 쫓아냈다. 약속에 대한 신심이 충성하게 했다. 이것을 보고 듣고 자란 조카 웃니엘도 세벨 성읍을 함락시켜 갈렙의 딸 악사를 아내로 얻었다. ///약속의 땅을 그냥 누릴 수는 없듯, 천국도 그냥 누려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주어진 사명에 순종해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누릴 수 있는 것이 천국이다.

여호수아 14:1-15

여호수아 14:1-15

1-5 백성들이 땅를 분배 받았다. 요셉의 후손이 므나쎄와 에브라임 두 지파가 되었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들어가서 살 성과 재산인 가축을 기를 목장을 받았을 뿐 땅은 분배받지 않았다. 이렇게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토지를 나눠 받았다.
6-15 크니즈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유다 후손과 함께 여호수아를 찾아와 45년전 모세가 한 맹세를 상기시켰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서 갈렙의 발이 닿는 땅은 영원히 갈렙과 갈렙의 자손의 유산이 된다고 했었다. 여든 다섯의 갈렙은 자신은 아직 강건하니 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대로 헤브로 산악지대를 자신에게 분배해주면 야훼의 도움과 야훼의 약속대로 아나킴을 몰아내겠다고 말했다. 여호수아는 갈렙에게 복을 빌어주고 헤브론을 유산으로 주었다. 헤브론은 갈렙의 소유가 되었다. 이는 그가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충성을 다한 덕분이다. 헤브론의 예전 이름은 키럇아르바였는데, 아르바가 가장 컸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전란이 멎었다.

여호수아 14
//오리무중 출신의 갈렙. 유다 지파에 속했으면서도 그니스 사람으로 불린다. 갈렙의 아버지 여분네가 언제 어떻게 유다지파 가운데 살게 되었는지 성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애굽에서부터 따라나왔을까? 출애굽하자마자 편입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애굽 후라면 유다지파를 대표하는 정탐꾼으로 뽑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탐꾼은 모두 각 지파의 지도자였다. //하여간 그는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 하나님께 신실(충성)한 사람이었다. 주 하나님의 맹세(말씀)에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라는 모세의 맹세를 (하나님의 축복을) 문자적으로 주장/적용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에 가장 큰 아낙자손의 땅인 헤브론도 쳐서 차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땅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임마누엘에 대한 신심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신)으로 섬겨 살아난 기브온 주민들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신)이야말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을 내신 하나님(신)으로 고백한 라합이 있었고, 그 전에 약속의 땅에 함께 들어가기 위해 이스라엘 유다 지파 가운데 들어가 살던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도 있었다. 이렇듯 성도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하나님께 신심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 임마누엘의 자비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