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2:1-24
요르단 강 동쪽에서는 야훼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거느리고 시혼 왕 바산과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에 그 땅을 르우벤 지파와 가드 지파와 므나쎄 지파 절반에게 주어 차지하게 했다. 요르단 강을 건너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의 왕들을 쳐죽이고 이스라엘 각 지파에 나누어주었다. 가나안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삼십일 명이나 되었다.
여호수아 12:1-24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 되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침략전쟁 관점대신 죄악이 관영한 (꽉찬) 가나안 주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전쟁으로 읽어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이 사형집행한 왕들의 총 수는 가나안 동편까지 포함하면 33명이나 된다. //고대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쳐죽인 33명의 왕들은 각기 다른 신들을 섬기는 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께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신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기브온 주민은 하나님의 심판전쟁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신(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노예가 되는 것도 마다했다. 시인이 시편 84편에서 노래한 ‘악인의 장막에 거하기 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사는 것이 낫다‘ 라는 구절이 맞아 떨어진다.
////앞으로 읽겠지만 가나안 정복은 지리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가나안 동편 포함 33명의 왕을 쳐죽였다고 기록하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있다. 가나안 정복을 지리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우리도 매일 영적 싸움을 한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뿐만아니라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자녀에 대한 욕심과 이웃과의 비교 등등 정복해야할 마음의 영역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이미 벌써 33개의 영역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구멍이 많은 삶을 산다. 우리 마음에는 아직도 주님보다 높아진 쫓아내야 할 왕들이 많다. 교회공동체적으로 정의와 공평을 실천해야 할 영역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마음의 정복과 공동체적 정의와 공평의 실천은 가나안 정복보다 더 힘든 싸움이다. 말씀과 성령의 도움으로만 가능한 싸움이다. 그래도 하나 둘 이미 이긴 싸움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싸움도 달려갈 수 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