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21-30

요한복음 8:21-30 (공동번역)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간다. 너희는 나를 찾다가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는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그래서 너희는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누구냐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분이 참 되시기에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할 뿐이라고 하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 깨닫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맘대로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것만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시늘 보내신 분과 함께 하신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아들이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이 말씀을 듣고믿게 되었다.

요8:28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니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임마누엘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요한복음 7:53-8:11

요한복음 7:53-8:11 (공동번역)

사람들을 돌아갔고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성전에 다시 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한 여자를 예수 앞에 데리리고 왔다. 그들은 예수께 모세의 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그들은 예수께 올가미를 씌워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들의 재촉에 예수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고 말씀하시고 몸을 굽혀 계속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사람들은 예수의 말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가버리고 마침내 예수 앞에는 그 여자만이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 고개를 드시고 그 여자에게 그들이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하고 말씀하셨다.

요8:1-11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았다. 간음한 여자의 처벌을 놓고 예수가 율법규정대로 돌로 치라고 말한다면, 사형권을 로마에게 박탈당한 유대인으로서는 로마의 실정법을 어기게 된다. 만약 살려주라고 한다면 율법의 규정을 어긴게 된다. 딜레마!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치라고 대답하셨다. 그곳에 죄가 없는 사람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먼저 돌로쳐야 한다. 그러나 예수가 누구신가?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이시다. 그러니 돌로 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죄없다고 자신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도 뒷걸음질 쳤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여자에게 무죄를 선고하신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을 아시고 미리 무죄를 적용하신 것이다. 이 무죄 선고가 유효하도록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그래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말씀도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있는 명령이다. 그러나 우리는 죄없이 살 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그래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며 사는 삶은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이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7:37-52

요한복음 7:37-52 (공동번역)

명절의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이렇게 외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 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직 성령이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으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예수를 분명히 그 예언자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었다. 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리 있겠는가? 반문했다. 그들은 성서에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이 살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기록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군중들은 갈라졌다. 몇 사람은 예수를 잡아가고 싶었지만 예수께 손을 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성전경비병들은 그대로 돌아갔다. 대제사장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찌하여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경비병들은 이제까지 예수처럼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동문서답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경비병들에게 너희마저 속아넘어갔느냐며 책망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지도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한 사람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율법도 모르는 예수의 무리는 저주받을 족속이다 하고 말했다. 그 자리에 전에 예수를 찾았던 니고데모도 끼여 있었다. 니고데모는 율법에 따르면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가 한 일을 알아보지도 않고 죄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니고데모에게 당신도 갈릴래아 사람이냐고 다그쳤다. 그리고 성서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갈릴래아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은 없다고 반박하고 핀잔을 주었다.

요7:37-52
//예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에게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고 이미 말씀하신 바 있다. 사마리아 여자와 그 동네 사람들은 예수께서 주시는 물, 곧 성령을 마시고 믿게 되었다. 이제 예수께서 성전에서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하신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 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번에는 반응이 갈린다. 성령이 아니라 알량한 자신들의 성서지식에 갇힌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지만 믿지는 못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자신감을 비쳤다. 예수를 율법을 모르는 자로 몰아부치고 저주를 했다. 그때, 예수를 찾아갔었던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율법에 따라 예수의 반론도 들어보고 예수가 한 일을 알아본 후에야 예수에 대해 바른 심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리새인들은 성서를 아무리 뒤져도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나온다는 기록이 없다며 니도데모에게 핀잔을 주며 반박했다. //어제 적용과 마찬가지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 없이 성서를 읽으면 알량한 자기 지식에 갇히고 만다. 그들에게는 성서의 기록이 진리가 아니라 자기 합리화, 아전인수의 도구일 뿐이다.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임마누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담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보혜사 성령이심을 알아야 한다.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요한복음 7:25-36

요한복음 7:25-36 (공동번역)

예루살렘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죽이려고 찾는 사람이 예수가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수가 대중 앞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있는데도 지도자들이 유구무언인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를 정말 그리스도로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몰라야 하는데, 자기들은 예수는 어디 출신인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큰 소리를 가르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정녕 따로 계신다. 너희는 그분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잡고 싶었으나 그에게 손을 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 가운데는 그리스도가 정말 온다고해도 예수보다 더 많은 기적을 보여줄 수 있겠냐며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 예수를 두고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제들은 예수를 잡아오라고 성전 경비병을 보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직 얼마 동안은 너희와 같이 있겠지만 결국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가야 한다. 너희는 나를 찾아다녀도 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 있는 곳에는 올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가 어디로 갈지? 이방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유다인들에게 가서 이방인들을 가르칠지? 또 예수가 있는 곳에는 올 수 없다는 말이 대관절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며 수군거렸다.

요7:25-36
//거침없이 가르치시는 예수 앞에 군중은 유구무언이었다. 그래도 군중들은 유대인들이 죽이려는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예수의 생태적 출신을 알고 있는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의 알량한 지식이 발목을 잡은셈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또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도, 정작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생태적 출신만을 따지다 보니 예수를 신성모독으로 죽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께 손을 댈 수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가 와도 예수보다 더 많은 기적을 보여줄 수 있겠냐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자들이 생겼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겠거든 자신이 한 일을 믿으라고 하셨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아지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잡기 위해 경비병들을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얼마지나지 않아 자신을 보내신 분께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을 찾을 수도 없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수도 없다고 하셨다. 믿음이 없이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사람들로 점점 더 미궁에 빠지게 한다.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말씀을 알량한 우리의 지식으로만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령하나님, 나를 떠나지 마옵소서.

요한복음 7:10-24

요한복음 7:10-24 (공동번역)

예수의 형제들이 명절을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께서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올라가셨다. 명절동안 사람들은 예수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군거겼다. 예수를 좋은 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는 군중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다인들을 두려워해 예수에 관해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명절 중간 쯤에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 가르치셨다. 유다인들은 예수가 배운 사람이 아닌데 저렇게 아는게 많을까? 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분의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면 예수의 가르침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인지 아닌지 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 생각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사람은 정직하며 그 속에 거짓이 없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율법을 제정해 준 이는 모세가 아니냐? 왜 너희 가운데 그 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군중들은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한단 말이오? 하고 반문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에 일을 한가지 했다고 군중들이 모두 놀라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모세가 할례법을 명령했다하여 안식일에도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있지만, 사실 할례법은 모세가 정한 것이 아니라 옛 선조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안식일에도 할례를 베풀면서 내가 안식일에 사람 하나를 온전히 고쳐주었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냐? 하시며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가르치셨다.

요7:10-24
//예수께서는 며칠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마음을 바꾸셨다. 앞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지만 다른 목적이 있으셨다.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는 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가르침의 증거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음을 말씀하셨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영광을 구한다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이라고 말씀하신다.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해 표절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망하는 목사들이 많다. ㅠㅠ 예수께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가르치셨는데, 세례자 요한의 표현을 적용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예수)는 쇠하여야 하리라’의 자세로 가르치셨는데, 몇몇 목사들은 ‘나도 흥하여야 하리라’ 하니 문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일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가르치신다. 안식일에 할례를 베풀듯이 안식일에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도 같은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할례도 안식일도 모세의 율법 이전부터 있었다. 예수께서 공정의 문제라고 하셨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율법의 규정보다 규정이 생긴 율법의 정신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군중들을 향해 (심지어 율법주의자들에게도) 모세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미워만 해도 살인이라고 가르치셨다.) 이미 여섯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